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삶이 적적하면 아무리 깨달음이 손님으로 온다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번뇌를 떨치는 일은 그만큼 어렵고 고독한 수련입니다. 설령 영영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한들 무어 그리 억울하고 서글프겠습니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거나 무엇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내려놓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저 높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깊은데 / 마음을 열고 들으면 / 개가 짖어도 / 법문” - 〈개소리〉

마음을 열다니요. 아마도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문이 있는가 봅니다. 문은 어떨 적엔 닫혀 있다가 어떨 적엔 열려 있습니다. 문의 향방에 따라 마음 상태가 달라집니다. 마음을 닫아 버리면 소통, 관계, 나눔, 이해, 깨달음 이 모든 것이 차단이 되겠지요. 폐쇄적인 심리에 다다른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닫는다 함은 부정적이고 불안함을 품고 있는 것이니 개 짖는 소리뿐만 아니라 그 어떤 소리도 시끄럽게 들리겠지요. 아름다울 리가 없습니다. 삶이 점점 거칠어지고 짜증과 분노로 가득할 겁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어젖히면 개 짖는 소리조차도 법문이라 기세당당하게 주장합니다. 법문(法文)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흔하고 하찮은 개소리를 법문이라 했으니, 입적하신 스님도 다비식을 물리어 분기탱천할 가당찮은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하고 깔끔하게 매듭짓습니다. 되돌아볼 틈을 주지 않습니다. 놀라운 촌철살인(寸鐵殺人)입니다. 

“성이 난 채 길을 가다가, 작은 풀잎들이 추위 속에서 기꺼이 바람맞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두고 마음 풀었습니다.” - 〈길에서〉

사소한 일에 그만 참지 못하고 성이 잔뜩 났습니다. 씩씩거리며 누구라도 자신을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감정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길을 가도 화는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마침 길옆엔 풀잎들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있습니다. 굴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몸짓을 끊임없이 해댑니다. 지칠 줄도 모르고 포기할 줄도 모르니 아둔한 철부지는 아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인간들에게 작은 풀잎은 보잘것없는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풀잎은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에도 거뜬히 버팁니다. 차갑고 거침없는 바람이 야속하게 불어닥쳐도 그저 꿋꿋이 묵묵히 견뎌 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여 모든 면이 뛰어나고 완벽한 것은 아니겠지요. 

글의 임자는 길가 작은 풀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화를 떨치고 평정심을 되찾습니다. 이는 그의 직관(直觀)이 놀라운 힘을 발휘한 결과입니다. 아울러 깨달음 역시 삶 곳곳에 널려 있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이 많으면 뭐 합니까, 쓸모없는 쭉정이들 집합체인 것을. 글이 많으면 뭐 합니까, 읽어 두고두고 씹고픈 건더기 하나 없는 맹탕인 것을. 화려한 색상이면 뭐 합니까, 상징하는 바 없이 빛 좋은 때깔을 뒤집어씌운 구정물인 것을. 선 굵은 판화와 절제한 듯 짧게 뭉친 글이 주는 역동적 의미는 목판화가 이철수가 빚은 혼신의 생명력입니다. 그의 판화와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힌 것은 너는 얼마라도 “느끼기는 하느냐, 느낌이 몸짓으로 우러나느냐”란 화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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