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매우 초록'

「매우 초록」노석미 지음 / 난다/ 2019
「매우 초록」노석미 지음 / 난다/ 2019

‘코로나 블루[코로나19+우울감(blue)]’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사회적 우울감이 우리의 일상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새로운 계절이 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봄은 왔고 꽃도 핀다. 흔들리는 일상을 잡아주는 부표(浮標)와도 같이 어김없이 피어 주는 고마운 꽃들이다.

우리의 삶이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종종 찾아오는 선물 같은 순간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는 책도 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보고 느끼고 쓰고 그리는 삶을 살고 있는 화가 노석미의 에세이 『매우 초록』이 그렇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그린 그림들과 함께, 작가의 근 10년 시골살이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누군가의 한 시절을 담은 기록을 대함에 있어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있을까 싶은 마음에 큰 기대가 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는가에 따라 별것 아닌 듯 느껴지던 나의 일상에도 특별함이 스며들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창작물이 지닌 기분전환의 힘일 것이다.

집 안에서도 마치 매우 초록한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땅과 집’을 시작으로 2부 ‘정원과 밭’, 3부 ‘동물을 만나는 일’, 4부 ‘사람을 만나는 일’, 그리고 5부 ‘집과 길’로 마무리된다. 각 소제목으로 짐작되듯, 서울을 떠나 양평이라는 땅을 찾아 집을 짓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원, 밭, 동물과 사람들을 만나는 에피소드들이 섬세하게 담겨있는 책이다. 그 모든 과정은 ‘사귐’이라는 키워드로 모아질 수 있고, 이 숱한 사귐들은 결국 나 자신과의 다정한 사귐으로 수렴된다.

글도 그림도 간결함이 특징인 노석미 작가답게, 기교와는 다른 무심한 멋짐과 반전 유머로 가득한 책이다. 또한 세밀한 관조와 사려 깊은 사유도 밀도 높게 담겨있어서, 단순한 듯 보이는 그림과 문장들에서도 계절과 자연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 보면 때로는 한겨울 칼바람이, 때로는 봄날의 청량한 바람이 부는 듯한 착각이 들지도 모른다.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듯이, 지루한 일상 중에도 싱그러운 기분전환으로 자신과의 건강한 사귐을 유지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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