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20×15. 2020.
땡. 20×15. 2020.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2주간의 멈춤” 참 이상한 세상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상이다. 누구는 육십 평생 처음이라 하고, 저 어린아이는 열 평생 처음이라 그런다. 나의 세상은 평온했지만 TV와 언론에서는 바이러스 때문에 긴박하기만 하다. 창밖을 내다보면 봄꽃이 만발하고 새잎이 돋고 계절은 온통 봄 흥으로 물이 올랐는데 그래서 더 이상한 세상이었다. “사람들이 멈추래, 자꾸 멈춰 달래요”  

멈추어 보았다. 뿌옇게 흐린 창(窓)이 보였다. 바닥은 매일 쓸고 닦지만 유리창은 그러질 못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면서 습관처럼 창밖 풍경을 쳐다보게 되었고, 그랬더니 창에 덮인 묵은 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른 유리세정제를 뿌리고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니 투명한 세상이 나온다. 유리 너머 세상은 연한 초록이 벌써 시작되었고, 연분홍 꽃들은 경대(鏡臺) 속에 비친 어린 기생의 화장기 짙은 얼굴처럼 요염하고도 서글펐다. 

멈추어 보았다. 항상 초록이 짙어져서야 봄이 지나는 것을 알았다. 이제라도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봄나물과 풀꽃을 볼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들녘에서 캐 온 달래, 냉이, 머위, 고사리와 방아 넣은 음식이 멋스러운 접시에 담겨 식탁이 차려지고, 간혹 간식으로 쑥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연일 속보가 뜨는 뉴스보다 산속에 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에 채널을 멈추고 있었다.   

멈추어 보았다. 아랫동네 아파트 사는 친구에게 산책하자며 전화를 했다. 웬일인지 궁금한 친구는 흔쾌히 나와 주었고 우리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간혹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꽃들에 감탄사를 추임새처럼 넣어 주며 걸었다.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적 학부모로 만난 내 또래 친구와 이제는 대학생이 된 아이들을 두고 여유롭게 함께 걷고 있으니, 그동안 우리는 삼십대의 젊은 여자가 아니라 중년의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친구는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워졌고 나는 서예가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아마 서로 대견하다 여기며 말없이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걷다 멈추며 서로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멈추어 보았다. 가족이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집 안팎을 부지런히 오가며 닦고 조이는 남자가 오늘도 부산하게 움직인다. 입학식이 사라진 2020년 3월, 아들의 대학생활이 집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쏟아지는 과제물에 지쳐가는 아들의 밤샘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해 봄은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얼음! 누가 제발 “땡” 좀 외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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