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썩. 20×15. 2020.
털썩. 20×15. 2020.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세상이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이게 뭐지! 정신없이 채널을 돌리다 깜박 실수로 ‘잠시멈춤’ 버튼을 눌러 버린 고요함이다. TV에서 감염자 수의 자리수가 바뀌는 긴박감이 선거철 개표방송마냥 도배가 되어졌다. 소름 끼치도록 하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다니는 저 화면은 재난 영화가 아니었다. 사람들 얼굴에는 하얀 마스크로 가득 차고 거리는 텅 비어 가고 있었다. 이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니 좀 예뻐 보이긴 하구나’ 헛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웃을 일이 없으니 이렇게 웃어야 하는 거다. 사람들은 악수 대신 눈인사로도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얼마 못 가 어릴 적 보았던 공상만화 우주인처럼 둥근 투명 유리관을 쓰고 다닐 거야......’

의도치 않게 셀프휴식을 하게 된 이른 봄, 갇혀버린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주는 강제 휴식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 보겠는가. 계절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풀꽃을 곁에 두고도 만져 보질 못했고, 넓은 정원을 가지고도 걸어 보질 못했다. 눈앞에 들녘을 보고도 뛰어보질 못했다. 마을 저수지에 내려앉은 물안개를 보고도 감탄사 한번 쏟아 낼 겨를이 없었다. 꽃망울이 막 터지려고 몽글몽글 봄이 차올라도 눈에 담아 보질 못했다. 그저 지나치며 올해는 좀 더 자라있구나 아쉬워만 했었다.  

또 그렇게 해마다 뜰 앞에 쑥과 냉이를 보고 아쉬워만 했다. 낙엽 밑을 비집고 올라오는 쑥을 손톱에 시커먼 흙이 들도록 캐어서는, 쌀가루 곱게 빻아 찜 솥에 뿌려놓고 하얀 김을 기다리고 싶었다. 보글보글 끓인 된장국에 뿌리 굵은 냉이를 한 움큼 올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항상 계절은 그냥 지나쳐 뜰 앞은 하얀 냉이꽃이 피고 내 키만큼 자란 쑥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봄볕, 누군가가 안부를 물어 왔다. “네, 잘 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갈 수 없어서 다소 따분해지기 시작합니다.” “아...그래서 지금 들녘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털썩 주저앉고는 긴 호흡을 한다. 여기 주저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있었는지를 촉촉해져 오는 눈가가 알려 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리 욕심 많다지만 나는 털썩하고 주저앉은 볕 좋은 마른풀 자리 욕심에 얼마나 숨죽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들이 계속 계속 흘러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저희 마을 들판에 이번 봄에는 쑥과 냉이가 없습니다. 사실은, 제가 모조리 다 캐 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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