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호 (사천시 향촌동)

후배와 함께 한 저녁식사. 맛있는 밥 한번 제대로 사주지 못한 터라 고깃집으로 정했다. 한 순배 건배가 오가고 달아오른 불판 위로 선홍빛 고기를 올려야 할 즈음, 후배를 위한 자리인 만큼 내 딴에는 직접 구워 주고 싶은 마음에 집게와 가위를 잡았다. 이를 놓칠세라 후배가 벌떡 일어서더니 자기가 굽겠다며 장비 일체를 빼앗듯 낚아챘다. 비싼 고기인데 유경험자가 굽는 게 낫다고 만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자신도 경험을 쌓아야 하고 선배님께 노역을 시키는 건 예의도 아니라는 변이었다. 무엇보다 맛있게 잘 구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못 이기는 척 전권을 넘겼다. 그 와중에도 내 눈은 온통 불판에 집중해 있었다. 태우지 않을까, 너무 많은 고기를 올리지는 않는지, 적절히 소금 간은 치는지, 노파심은 깊어 갔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후배는 대화에 함몰되었고 센 불에 고기는 연기를 발산하며 타고 있었다. 부랴부랴 손을 썼지만 이미 첫판은 완패로 기운 뒤였다. 보다 못한 나는 후배의 권한을 강제 환수하고 불 조절 실패에 대한 질책도 던지고 말았다.

그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교차했지만 자리는 다시 즐겁게 진행되었다. 모임을 파하고 다음날 신문에 실린 어떤 칼럼(젊은이들을 믿고 기회를 주자는 내용)을 보면서 전날의 내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무경험자들을 우려만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경험자가 될 것인가. 그들이 청년들이라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고기는 당연히 후배가 구워야 한다는 생각은 꼰대의 관점이지만 스스로 구워보겠다는 자발적 동기는 별개의 문제다.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려 했던 내 행동을 배려라고 포장할 순 있지만 후배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경험을 빼앗긴 결과였다. 무엇보다 내가 더 잘한다는 우월감을 은연중에 과시한 치졸한 꼰대기질이 내면에 잠재해 있었던 건 아닌지 부끄러웠다. 믿고 맡긴 채 과정을 진심으로 지켜봐주는 노련한 배려가 아쉬웠다. 조언은 그다음의 문제다.

꼰대가 화두인 요즘이다. 권위와 지위와 나이 등을 앞세워 일방적 강요나 우월감을 표출하는 사람들로 대부분 어른이나 선배 선생님 등을 비꼬는 말이다. 요즘은 2030 젊은 꼰대도 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는 공통점이 자리 잡고 있다. 나이부터 확인하고 옛날을 비교 기준으로 삼으며 예의나 옷차림 행동 등 단점을 찾아내고 잔소리를 일삼으며 훈계와 지시를 능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꼰대일 가능성이 높다. 나이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처럼 들린다.

그런 반면 혈기와 유행 그리고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 등 사회 기류를 앞세운 젊은 꼰대들의 등장도 세대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꼰대의 경계엔 소통과 경청 그리고 열린 긍정 마인드의 부재가 존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경청하느냐?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를 주고받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조언하고 어떤 태도로 수용하느냐가 꼰대문화를 벗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젊은이들이 새로운 리더로 커 갈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게 기성인들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 

며칠 전 신년회 때. 이번엔 절대 고기는 굽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고기는 니가 꿉어라?”며 선언했더니 “태우지 않고 확실히 굽겠습니다” 활짝 웃으며 후배가 화답했다. 그날 고기는 타지 않았고 육즙을 머금은 채 입안에서 녹았다. 그의 경험은 재산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