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 대한민국의 주권은 과연 국민에게 있는가

▲ 송창섭 시인.

시간이 다소 흘렀지만 어슴푸레 기억이 날 겁니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에서는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일이 발생했습니다. 강제 철거에 반대하는 세입자 곧 철거민들이 경찰특공대의 무력 진압에 맞서 저항을 하다가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입은, ‘용산 참사’라 이름 붙은 사건이었지요. 

30조 원에 이르는 뉴타운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지역 주민 일부는 한순간에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터무니없는 보상금으로 삶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특히 상가세입자들은 시설비, 권리금, 월세, 상가 보증금 등 투자에 비해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해 큰 빚을 지고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아빠, 엄마로서 그저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소박한 그들의 바람이었습니다.  

“희망이 다시 피어나길 바랍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내가 살던 용산』이란 만화를 새삼스레 뒤적거렸습니다. 용산 도원동은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나서 십일 년 간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십일’이라는 숫자가 우연의 일치치고는 묘한 기분을 자아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운명이라고 할까요. 요즘 만화책은 예전에 비해 짜임새 있고 간결하며 천연색을 활용하여 시각 효과도 최대한 살리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을 한껏 줄이고 편안함을 줍니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이 만화는 표지 그림이며 책장의 촉감이 사뭇 다릅니다. 게다가 내용은 또 어떻고요. 재미나고 우스꽝스런 장면은 시쳇말로 ‘1도’(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펼친 이유는 뭔가 특별하겠지요. 우리가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안다 해도 쉬이 잊어버리는 삶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주변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같은 하늘 아래 이웃에 사는 ‘못 살지만 잘 살려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애환 어린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상하겠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를 떠올립니다.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이라 함은 모든 힘의 원천은 엄연히 국민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나라는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우리의 실상은 어떨까요. 국민은 뒷전으로 밀려 실세는커녕 동네북 되어 얻어맞거나 주변인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랩니다. 국민의 희로애락과 함께하며 심부름꾼이어야 할 정치인들은 국민의 혈세를 제멋대로 오남용하며 오히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더불어, 더불어, 자유, 자유’ 떠들며 마치 백성을 위하듯 소리를 높입니다. 진실성 함유량이 얼마나 될까요.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무엇합니까. 그것은 가진 자, 힘센 자 곧 그들 자신을 위한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걸요. 허울 좋은 퍼포먼스performance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녕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입니다.  

만화는 ‘용산 참사’의 희생자 다섯 분과 구속 수감된 부상자 등 모두 여섯 꼭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입니다. 눈물도 나고 분노도 하고 원망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덧없고 허망하기도 한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세입자를 두고 테러범, 폭도라고 몰아붙이는 조합원, 용역들, 철거업체 직원 나아가 경찰들의 무자비한 강제 진압이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