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5×10. 2020.

모두가 잠들었을 때의 늦은 귀가는 어쩌면 조금 더 쓸쓸하기만 했다. 인적이 끊겨버린 거리에 홀로 켜진 가로등 불빛조차도 반갑고, 불 꺼진 가게에 밤새 켜진 간판 불빛을 보면서 그래도 참 따뜻하겠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참 다정했었다. 아주 늦은 밤은 소리 없이 감정만 한껏 차올라 항상 그랬듯이 그 길을 지나간다. 

그래서 그때부터다. 조금 이른 귀갓길에는 빈손이었던 적이 없었다. 가게의 불빛이 정겨워 차를 세운다. 지친 피로감으로 마감을 준비하는 주인아저씨에게 더 살갑게 눈인사를 건넨다. 야식거리를 무엇으로 할지가 하루의 마지막 고민이 되었다. 가족으로부터의 부재에 대한 미안함이기도 하겠고, 하루 종일 끼니를 거른 것이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다. 그 미안함과 허기만큼 손에 든 무게도 점점 커진다. 두 손을 가득 채웠지만 혼자서 거뜬히 들 수 있는 봉투가 무겁다고 초인종을 눌러 댄다. 그리고는 대문까지 마중 나오기를 기다린다. “현관 비밀번호 몰라요? 야식 사 올 때마다 엄마는 훈장 달고 오는 사람처럼 너무 요란해요.” 

오늘따라 달이 더 하얗다. 겨울이라 그런가 보다. 차가운 보름달이 어두운 둑방길을 비춰주니 길가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겨울 풀들이 시린 듯이 흔들린다. 여전히 허전했다. 공기도 허전하고 기분도 허전한 밤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른 귀가에도 빈손으로 이 길을 지난다. 아들과 체중을 감량하기로 약속한 이후부터 우리는 야식을 끊기로 하였다. 운전석 옆자리에 방금 튀겨낸 치킨 냄새로 행복했었고, 때로는 음료가 쏟아질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좁은 밤길을 달렸다. 비밀번호보다 초인종이 더 행복했고, 투덜거리며 나오지만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내 손만 쳐다보던 아들의 얼굴이 있었다. 빈손이 되고부터 이젠 서서히 그 기억들이 옅어져 버린다. 

지금 차 안은 마시다 남은 한 모금의 식은 아메리카노 밖에는 이 허전함을 채워줄 것이 없다. 오늘도 여전히 빈손으로 이 길을 지난다. 조금도 들뜨지 않고 재미도 없다고 중얼거렸다. 큰 사냥감을 어깨에 메고 가족 앞에 던져 놓는 그 기분이 없어져 버렸다고 투덜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빈손보다 더 쓸쓸했다. 차 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냄새와 아무렇지도 않은 무게로 아무렇지도 않은 나만이 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이 밤이라고 했지. 이렇게 새벽은 사람을 가장 솔직하게 만들지. 빈손만 가지고 가는 줄 알았더니 가슴도 다 비워지는 시간인 거야. 그래서 이 시간이 되면 사람을 사랑하는 마법에 걸려 버렸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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