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밝아. 20×15. 2019.

1994년 정도로 기억한다. 소설 벽오금학도 때문에 나에게 서울의 첫인상은 낙원상가였고 탑골공원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가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그곳으로 가장 먼저 달려갔다. 주인공 강은백이 나올 것만 같은 탑골공원을 유심히 쳐다보고 중절모를 쓴 노인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소설 속을 상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살면서 멘토를 찾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같은 시대를 누리며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배우로는 최진실이 그랬고, 소설가로는 이외수가 그랬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소설가의 글과 삶을 지켜보며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가 가까운 곳으로 강연을 온다. 줄 서는 것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유명인이라고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싫었고 건네는 인사나 눈빛조차도 그에게는 부담스러울 듯싶어 잠시 머뭇거렸지만 단숨에 달려가 버렸다. 그는 줄곧 사회 이슈가 되어 한평생 떠들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상으로 내뱉는 말들이 화살이 되었고, 조금 다른 유전인자로 태어난 한 예술가의 삶이 비난이 되기도 하고 선망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는 칠십의 노인이 되고서도 세상에서 존나게 버티는 삶을 살고 있었다. 

궁금했던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로 그를 읽어 보고 싶어졌다. 숨소리를 듣고 입술의 떨림까지 보이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거침없고 기괴한 문장을 만드는 그는 매우 예의가 바르고 눈빛이 선했다. 세월이 사람을 만드는지 아님 처음부터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여겼다. 

참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고 나는 당당하지 못하다. 그는 세상이 다 아는 유명인이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처럼 살 수도, 그처럼 살지 않아도 되어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며칠 동안은 내가 풀고 싶었던 숙제를 남의 인생에서 본 듯하여 참 행복했었다. 그렇지만 점점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흔들림을 보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따로 일기를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느끼는 생각 하나하나가 그의 글로 올라왔다. 그래서 덩달아 아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에게 하늘이 준 재능 덕분에, 아니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도 하릴없이 보이고 쓸쓸하고 고독할 수 있겠다 여기니 이제까지 너무 밝아서 보였던 것들이 풀려 버렸다. 아, 저런 족속도 있고 그런 족속 중 하나가 삶을 저리 살아 내고 있으니, 내가 느끼는 혹독한 감정들이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나보다도 더 끝없이 고독한 한 사내의 존버정신과 그 쓸쓸함에 경이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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