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여주기. 20×15. 2019.

“선생님, 작품 한 점 부탁드립니다.” 이때부터 머릿속은 온통 붓이 종이 위를 오가는 생각으로 헤어나질 못했다. 거친 붓을 써야 맛을 낼 수 있을까. 화선지는 발묵(潑墨)이 적당히 많은 것이 좋겠지. 농묵(濃墨)으로 거칠게 쓸까 담묵(淡墨)으로 부드럽게 쓸까. 답답하게 공간을 채우지 말고 글씨에도 여백(餘白)을 주어야지. 그 공간에는 밝은 액자가 더 잘 어울리겠지. 그리고는 붓을 가져가 종이 수 십장을 버려가며 써댄다. 한참을 붓과 씨름하다 작품이 완성 되어졌다. 내가 하는 모든 작업들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시도하고 또다시 붓질하고... 작품 한 점, 전각 도장 한 점 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새웠던 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이젠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선생님, 작품 한 점 부탁드립니다.” 많은 작업량과 몇 번의 개인전을 치르면서 하고 있는 모든 작업들이 점점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쉽게 붓을 들었다. 순간적인 느낌이 항상 최고라고 여기며 붓을 대고 칼을 잡았다. 그래서 작품 한 점 완성 시키는데 몇 번의 반복을 거치지 않는다. 금세 작품 한 점이 완성되었다.

 “선생님, 제 작업시간이 당겨지면서 이제는 많은 것들이 수월해졌어요.” 어느 날, 자신의 일로 일가견을 이루신 분과의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서예가의 앞으로 행보를 응원하시며 자신 또한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한 것이 실력이 되었고, 어느 단계까지 오르고 나면 그 자리에서 좀 더 수월하여 모든 것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돌아간다고 하셨다. 

“그게 제가 바라는 지경(地境)이었습니다.” 긴장되는 인터뷰도 자주 하다 보니 수월해지고, 강연과 강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작품 작업도 한결 수월해졌다. 애써 힘쓰지 않아도 결과가 당겨졌다. 수없이 반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실력이 되어 버린다. 공황장애와 같은 긴장감이 너무 싫어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었다. 아마 점점 당겨지는 그 쾌감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젠 천천히 가고 싶어요.”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이 먹어 애쓰는 번거로움을 버리고 좀 더 쉽게 가고 싶은 욕망 때문이지도 모른다. 반복이 당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든 할 수 있어요. 그까지 것 뭐라고...” 그래서 계속 이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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