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록 사천시산악연맹 전무이사

▲ 와룡산.(사진=뉴스사천DB)

물을 보려면 산에 오르라. 역설이지만 맞는 말이다. 낮은 세상에서 높게 살려는 발버둥 탓에 보지 못하던 자연의 당연한 이치를 산 정상에서 깨닫는다. 산마루에서 굽이 흐르는 능선을 보자. 그 능선을 따라 높은 만큼 깊게 흐르는 골짜기가 생겼고 그 깊은 계곡은 이내 작은 실개천의 시작이 된다. 실개천은 모여 내를 이루고 그 내는 천으로, 그 천이 이내 강이 되어 북에서 남으로 혹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 바다를 만난다.

물이 그렇게 낮은 곳을 찾아 내리는 기질은 산에서 비롯되었다. 산은 결국 물의 근원이다. 태초에 천지가 요동칠 때 얕은 지각의 표면을 뚫고 땅 속의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대지를 뒤흔들어 질서를 잡은 천지창조의 변혁이 산의 기원이다. 산자분수령,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눈다. 물은 산을 넘지 않고 산은 물을 가르지 않는다는 진리가 그것이다.

산경표의 저자가 누구이던 간에 우리는 먼 조상 때부터 산자분수령의 대전제로 한반도를 읽었다. 결국 한반도의 모든 산은 한 뿌리에서 발원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겨레의 강토 한반도의 지형은 백두산을 정점으로 1정간 1대간 13정맥으로 나눈다. 한반도 등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하고 그 줄기를 잇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산줄기를 정맥이라 한다. 1정간인 장백정간은 백두산에서 발원해 두만강으로 흐르는 유일한 북향 산맥이다. 그리고 또 하나 13정맥 가운데 낙남정맥만이 백두대간의 끝인 지리산에서 출발해 동으로 흘러 낙동강 끝에서 바다로 깃든다.

와룡산 801.4미터, 한반도 일반적 산 높이에 비하면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예사 산이 아니다. 맑은 날 와룡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라.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지리산의 천왕봉을 안게 된다. 와룡산이 낮은 산이 결코 아닌 이유가 지리산을 출발한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가장 높이 치솟아 주위 산을 거느리는 형상에 기인한다. 해안선 해발 제로에서 만나는 산이라 더욱 그렇다. 올망졸망한 섬들을 신하처럼 거느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의 와룡산은 그렇게 태곳적부터 자리하고 있다.

세종태실지가 있는 은사를 지나 완사와 흥사를 구분하는 선들재에 서본다. 분명 물의 경계다. 능선 하나로 남쪽으로 흘러가면 흥사 매향비의 합수부가 있는 사천만의 묵곡천이 나온다. 하지만 북쪽은 진양호로 흘러들어 남강으로 흐른다. 좀 더 내려가자. 유수천이 나온다. 분명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했는데 물이 산을 넘는 곳이다. 허리가 잘려 진양호 물을 받아내는 유수천이 있고 이 물은 가화천을 지나 사천만으로 흐른다. 인위다. 해마다 물 피해를 입는 원인이 된다. 진주의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뚫은 방수로이다. 그 고마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물은 그렇게 거꾸로 흐른다. 유수천의 나동 고개 마루금을 따라가면 진주 정촌 화원이 나온다. 이곳은 남강수계의 공단이 대거 이주해와 산업단지를 이룬 곳이다. 최근 뿌리산단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된 이유가 물의 흐름문제이다. 분명 물의 경계지역이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끼고 고성 부포고개에 까지 이른다. 사천강의 발원지다. 여기서 출발한 물은 북으로 흘러 사천 정동면 수청을 지나 사천비행장 옆을 통해 사천만으로 향한다.

지금부터가 와룡지맥이다. 낙남정맥에서 분기된 마루금은 남해바다 자란만을 바라보며 수태산으로 든다. 수태산은 고성 와룡산과 맞닿아 있는 산이다. 고성 와룡산 향로봉의 한 줄기는 이구산으로 이르러 선황산성으로 뻗고 한 줄기는 진분계 고갯마루에서 사천 와룡산으로 향한다. 진분계의 낮은 마루금은 분수령인지도 모르고 지나친다. 진분계 마을의 얕은 고개마루가 물의 경계를 이룬다. 진분계 약수터의 물은 죽천천의 발원지다. 이 개울은 현종의 아버지 능이 있던 능화를 지나 구룡마을을 끼고 흘러 사천일반산단을 지나 바다로 향한다. 진분계의 남쪽은 구실과 궁지를 끼고 발전소 옆 사등으로 깃든다.

물길을 안내하는 낙남의 흐름을 따라 와룡산은 사천의 주산이다. 천 년 전 찬란한 고려의 역사를 이끈 현종대왕의 어린 잠룡기와 아버지 왕욱의 유배의 시간을 지켜낸 산이 와룡산이다. 거슬러 천년, 철을 부리는 기술로 한중일 삼각무역의 교두보를 형성한 해상무역항, 늑도항을 품은 산이 와룡산이다. 오늘날에 와서, 미래 먹거리 항공산업의 수도로 다가가는 사천은 우연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고려 왕기의 정기가 서려있고 풍패지향의 도시로서의 자긍심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산의 기운이 풍토를 결정하고 대대로 이어온 기질이 향토성을 결정한다. 백두대간의 기운과 와룡산의 기운으로 같은 고장을 이루고 살아온 산악인 선배들과 지역유지의 염원으로 41년 전 와룡산 민재봉에 제단을 꾸리고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세시풍속으로 전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를 올리니, 이 행사가 비룡제의 기원이다. 사주인의 기개와 자긍심으로 대한민국의 첨단도시 사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백두대간의 대한민국 산천이 오늘처럼 항상 깨끗하고 평화롭게 이어지도록 마음을 모으는 행사로 해를 거듭하고 있다.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 했다. 비룡제의 기원과 취지에 가장 들어맞는 고사다. 산처럼 무거워 신뢰와 배려가 몸에 배어 있고, 어떤 시련이 닥쳐도 쉽게 변하지 않으며, 또 물처럼 겸손하고, 세상이 변화무쌍하여도 허둥대거나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려 함이다. 사천 산악인들은 올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비룡제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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