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특집 : 사천 정치인 인물탐구⑤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자유한국당)

‘KAI 직접 투자 고교’ 육성 제안…“그래야 인구 는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엔 안타까움·아쉬움·원망 교차 표현
사천남해하동 공동 사업으론 ‘선비길 프로그램’ 제안 

2020년 4월 15일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일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는 하나 이 선거에 누가 나서는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 하는 이가 결코 적지 않다. 마침 출마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이들이 여럿이어서 일찌감치 사천 정치인 인물탐구를 시작한다. -편집자-

▲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21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뜻을 밝히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최상화(65년생) 전 청와대 춘추관장. 20대에 민자당 청년당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자민련-한국신당-한나라당을 거치면서 경력을 쌓았고, 2003년 최병렬 전 대표체제에서 사무처 총무부장에 오르며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후보가 당선하자 취임 실무 추진단장을 맡을 만큼 신임을 얻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으로 2년간 근무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 임했으나 당내 경선을 뚫지 못했고, 이후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를 2년 넘게 맡았다. 현재 최상화지역발전연구소장, (사)남일대보존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인터뷰는 문화공간 ‘담다’에서 24일 가졌다.

  <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약력 >

  - 1965년 5월 사천시 곤양면 출생
  - 동성초(31회) 졸업 / 사천중(35회) 졸업 
  - 사천농고(현 경남자영고 31회) 졸업
  - 경남과기대 산림자원학 학사
  - 동국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전 국회 정책연구위원(1급)
  - 현 자유한국당 상임전국위원
  - 현 (사)구계서원 대관대유계회 이사장

▲비교적 빠른 시기에 정치에 입문한 것 같다.

=20대 때 부산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계로 시작했다. 민자당 청년당원으로 활동했는데, 이후 JP(김종필 전 국무총리)계가 자민련으로 분리될 때 그쪽으로 갔다. 가까운 선배들 영향이었다. 2001년에 한국신당과 한나라당이 통합하면서 정치에 더 깊숙이 들어간 것 같다.

▲정치 입문 초기엔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다. 어땠는지?
=나는 운명론자다. 충의와 신의란 말을 좋아하고 중시했다. 그러다보니 꽃길만 걷지는 못했다. 과거 자민련에서 한국신당으로 갈 때도 김용환 당시 국회의원에게 설날 아침에 인사하러 갔던 게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으로 와서는 최병렬 당대표께서 나를 총무부장으로 뽑아주셨는데, 이때부터 운명이 바뀐 것 같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춘추관장을 지낸 것도 운명으로 보나?
=물론이다. 박 대통령과는 천막당사 시절에 겪은 일화가 있다. 천막을 치고 얼마 안 지나 최고위원회 회의를 하는데, 비가 샜다. 급히 양동이로 받쳐뒀는데, 박 전 대표(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그걸 연출로 이해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했다. 서둘러 설치하다보니 부족함이 있었다고. 그 일로 눈에 들지 않았나 싶다.

▲그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매우 힘든 얘기다. 국가와 정부, 국민이 너무 잔인하단 생각을 했다. 평소 부정에 대해 엄청 경계하셨던 분이라서, 혐의 받는 여러 일들을 실제로 했을 리 없다 생각한다. 당시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동물을 키우고, 돌탑을 쌓고, 서각을 배우며 시간을 견뎠다. 주변에서 정무적 판단을 잘못해준 것 아닌가 하는 원망도 든다.

▲본인이 춘추관장을 계속했다면 탄핵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나는 그 당시 직언을 곧잘 했고, 그러면 내 의견을 잘 들어주시곤 했다. 무엇보다 언론도 예전처럼 그렇게 비판적이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분명한 건 탄핵 과정에 언론이 큰 몫을 했다.

▲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총선 얘기로 넘어가보자. 왜 출마하려 하나?
=정치인에 속고 또 속는 지역민들이 불쌍해서다. 4년 전 선거에서도 SPP 문제로 속지 않았나. 채권단이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해주기로 했다고 홍보하고, 회사에서는 고맙다고 감사패까지 줬는데 결과가 어떠했나. (SPP는)발버둥도 못 쳐보고 사라졌다.

▲현 여상규 의원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면 되겠는지?
=솔직히 현 국회의원이 (지역을 위해)한 일이 뭔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 외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적어도 정치인이 되려면 기본자질 정도는 있어야 한다. 청사진만 내놓을 게 아니라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평소 GGP 우회도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인가?
=그렇다. 사실 도로 같은 기반시설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GGP가 어느 정도 사업비를 내겠다고 했으면 얼른 받아야 한다. 나머지는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의 몫이다. 국비를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잘못 가고 있다.

▲본인의 청사진을 보여 준다면?
=사천 산업의 핵심은 ‘우주항공’이다. 여기서 바다를 이용한 레저관광으로 넓혀가야 한다. 그 과정에 중요한 것이 교육문제다. 사천의 항공산업 성장에 비해 인구가 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데, 나는 KAI가 직접 학교를 만들거나 운영하면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인구가 빠져나가지 않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 수 있다. 4년 전 선거 때 하성용 전 사장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바 있는데 당 경선에 실패해 꿈을 못 이뤘다. 다시 도전해보겠다.

▲사천남해하동 전체를 아우르는 사업을 제안한다면?
=‘선비길 프로그램’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세 지역의 역사문화관광 상품을 잇는 길이다. 쉼터와 게스트하우스, 유스호스텔을 적절히 갖춘다면, 경관 위주의 트레킹 코스와는 다른 독특한 둘레길이 되리라 본다.

▲20대 총선 때는 ‘너무 뻣뻣하다’거나 ‘거만해 보인다’는 지적이 따랐다. 이런 비판, 어찌 생각하나?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잘 안 웃고, 머리를 들고 다닌다는 얘기. 영상물을 보니 정말 그렇더라. 오랜 관료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다. 전략공천을 받을 거라 자신했던 것도 영향을 준 것 같고. 반성 많이 했다. 요즘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많이 웃기’ ‘정겹게 손잡아 주기’를 마음속에 외치는데, 많이 바뀌지 않았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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