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김소나·변용석 부부

▲ 서랍 속 인터뷰의 열세 번째 주인공 김소나 씨.

[뉴스사천=고해린 인턴기자]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22일, 삼천포 용궁수산시장 근처의 한 카페에서 열세 번째 의뢰인을 만났다. 추억의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어 가족사랑 얘길 들려줄 오늘의 주인공은 김소나(49)·변용석(54)씨 부부.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김 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뒤 말문을 열었다.

“남편하고 저는 사내 커플이었어요. 지금 향촌동 한마음병원 자리에 있던 성심병원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는 총무과, 남편은 법인기획실에 있었죠.” 

두 사람은 병원 내에 있는 산악회, 볼링, 테니스, 수영 등 여러 동호회 활동을 함께하며 가까워졌다. 동호회에서 야간 산악을 갔던 날, 어두운 밤길에 남편 변 씨가 김 씨의 손을 꽉 잡고 2시간 동안 어두운 산길을 내려왔단다. 그때 김 씨는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산을 내려와서 보니 남편 손에 가죽물이 들어 얼룩덜룩 했다고. 가죽물처럼 두 사람의 사랑도 자연스레 물든건 아닐까.  

2년 정도의 연애 후, 부부는 95년 11월 12일 웨딩 마치를 울렸다. 

“저희가 야구를 좋아해서, 롯데가 괌으로 겨울 전지훈련 간다는 말을 듣고 신혼 여행지를 정했어요. 해외여행 갔다 온 친구가 외국 호텔에는 이불이 없다고 해서, 매트리스를 싸고 있는 이불을 당겨서 덮을 생각을 못 하고 5박하는 동안 이불 없이 지냈어요. 지금은 남편이랑 웃어  넘기는 추억이 됐죠.(하하)”  

허니문 베이비인 첫째가 돌을 맞은 1997년, 그들 가족도 IMF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일터였던 병원이 부도나고, 부부는 병원을 나오게 됐다. 남편 변 씨가 새로 벌인 사업도 잘 풀리지 않았다고. 상심이 컸던 변 씨는 빈맥까지 얻게 됐다. 가족들은 변 씨의 치료를 위해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김 씨의 고향인 삼천포로 내려왔다.

“친정어머니가 여인숙부터 시작해서 여관까지 오래 하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기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빚을 내고 돈을 모아서 29살에 모텔 운영을 시작하게 됐어요. 벌써 햇수로 20년째네요.”

모텔 운영을 하며 우여곡절도 많았다는 부부. 모텔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 당시 동네의 ‘양아치’ 같은 녀석들이 김 씨 부부를 만만히 보고 무례하게 굴기도 했단다. 

“어느 날 딸이 껌을 먹고 물을 묻혀서 긁으면 살에 붙는 스티커를 가져왔는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껌을 한가득 사 와서 제 팔목에는 거미 스티커를 붙이고 우리 아저씨 어깨에는 나비를 딱 붙였죠. 시계로 교묘하게 가렸더니 진짜 문신처럼 감쪽같더라고요.(하하)”

무례한 손님들이 오면 일부러 슬쩍 손목을 보여줬다는 김 씨. 효과는 확실했다. 왕년에 좀 놀았던(?) 것처럼 보이려던 꾀가 먹혔는지, 다음부터 손님들이 김 씨를 부르는 호칭이 ‘누님, 이모’로 바뀌었다고. 모텔 운영이라 낮밤이 바뀌기도 하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편이 응급실에 가는 것도 일상이었다니,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피, 땀, 눈물을 쏟아 꾸려온 모텔 건물을 인수하는 계약을 했을 때 너무 행복했다는 부부. ‘내 집이란 게 이런 거구나’하고 가슴이 벅찼단다.

여하튼 사랑은 열매를 맺어, 부부는 슬하에 민진(24), 소연(18) 두 딸을 뒀다. 김 씨에 따르면 남편 변 씨는 아이들이 부르면 항상 달려가는 ‘딸바보’ 같은 면모를 가진 아빠라고. 

“남편이 저한테도 다정하고, 제 말을 잘 들어주지만. 애들한테도 최고의 아빠예요. 애들한테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좋냐고 물으면, 애들은 아빠가 제일 좋다고 할걸요. 우리 애들은 엄마 아빠처럼 재밌게 살고 싶다고 빨리 결혼하고 싶대요.”

금슬 좋은 부모님 밑에서 큰 영향일까. 비혼, 독신주의가 나날이 늘고 1인 가구가 넘치는 세상인지라, 자식들의 평범한 소망이 오히려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요즘 낮에는 주부민방위, 봉사활동, SNS 서포터즈 등의 활동으로, 밤에는 본업인 모텔 운영으로 바쁘다는 김 씨. ‘정신이 없다’면서도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한 페이지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지우고 싶은 데가 없어요. 힘들었던 일, 좋았던 일... 제가 살아온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모여 저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인터뷰를 끝낸 김 씨가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서는 당당한 걸음걸이를 보며, 문득 앞으로 그녀가 써나가게 될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졌다. 

 

#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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