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 유(遊). 15×20. 2019.

거 참, 모를 일이야. 괜한 길 떠나는 게 아닌지 마음 짐이 한가득이더니, 돌아오니 그리움만이 한가득이구나. 이것저것 준비할 때는 과할까 덜할까 계산기만 두드려지더니, 이제 돌아서보니 아쉬움만이 한가득이네. 새로운 만남들이 있었고. 내가 그랬잖아. 여행은 새로운 발견보다 새로운 만남이라고. 그래서 더 짙은 그리움이라고. 함께 떠났던 아들 녀석이 여행 후유증 심하게 겪는 걸 보니 여행은 그 몹쓸 그리움이 맞아. 

생각해보니, 몸이 지칠까봐 옆을 돌아보지 않았어. 내 몸 지극히 아껴가며 돌아다녔지. 에너지를 최대한 비축해서 나는 많이 보고 싶었고, 많이 쓰고 싶었고, 많이 느끼고 싶었거든.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욕심쟁이였던 것 같아. 

근데 복병이 있었지 뭐야. 규칙대로 움직이는 여행은 딱 질색이었거든. 난 어딜 가더라도 발길 닿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여행 중에 여정을 정하는 사람이었잖아. 그래서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은 나와의 싸움이었지. 끊임없이 룰을 일탈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내가 여행 중인지 수행 중인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어. 난 견디어야만 했지. ‘저... 여기 남으면 안 되나요?’ ‘이렇게 다 함께 행동해야 하나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생각들을 꾹꾹 눌러야만 했던 묵언수행으로, 나는 아주 착한 여행을 한 순한 여행자가 되었지.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대련 성해광장에서 한 시간의 개인시간이 생겼을 때 드디어 자유구나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이때다 싶어 나는 꼼작도 하지 않았어. 광장이 펼쳐 보이는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지. 7월 말의 열대야지만 바닷가 바람과 눅눅한 습기를 오로지 피부로만 느끼며 두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려대고 있었어. 이게 내가 상상하는 최고의 자유였거든. 지나가는 사람들만 뚫어져라 쳐다봤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 여길까봐 중국인처럼 아주 태연한 척. 그러는 사이 난 중국 사람들이 가족과 연인과 함께 있는 표정들을 다 스캔해 버렸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더라. 

SNS에서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또 다른 사람들과 웃고 있는 사진들이 부지런히 올라오지만 여행지에서 바로 출장지 남경으로 국내선을 타고 간, 사람 좋은 쌍둥이 아빠도 아직 여행 중이고, 과테말라에서 어린 남매와 함께 왔던 참 곱게 생긴 젊은 엄마도 아직 비행 중이란다. SNS를 하지 않는 고3 수험생 아들도 책상 위에서 그 여행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꿈을 꾸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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