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최진정·김현아 부부

▲ 최진정 씨가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그의 가족이야기를 들려줬다.

[뉴스사천=고해린 인턴기자] 추억의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어 가족사랑 얘길 들려줄 열한 번째 의뢰인은 최진정(54) 씨다. 최 씨가 가져온 비디오테이프에는 외동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최 씨는 사천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집사람하고는 93년도에 처음 만났습니다. 교통사고 난 친구 병문안 갔다가 그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됐죠.”

최 씨의 아내는 간호사 김현아(52) 씨.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서너 달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두 사람이 식을 올린 것은 1993년 11월 28일. 짓궂은 친구들의 장난을 피해 부부는 피로연을 안 하고 신혼여행지인 제주도로 도망쳤단다. 

비디오테이프의 주인공인 아들 한솔(26)이는 결혼 다음 해인 94년 11월에 태어났다. 최 씨는 아직도 아들이 태어나던 날 장모님이 하신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밤새도록 진통을 기다리다가 아내가 씻고 오라고 하길래, 사우나 가서 씻고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왔더니 애를 낳았대요. 잠깐 자리를 비운 그 사이에! 장모님이 자기 딸은 고생하고 있는데, 무정한 사람이라고 하셨죠. 씻으러 가란다고 씻으러 가냐고.(하하)”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암 선고를 받은 것. 청천벽력 같았다.

“제가 28살 때고 우리 애가 100일 때였을 거예요. 병원을 갔는데 위암이래요.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걱정되고 무서웠죠. 그때 간절히 빌었던 소원이 우리 애 초등학교 들어가는 것만 보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다행히 수술이 잘 돼 소원을 이루게 됐다는 최 씨. 그에게 아들은 “존재 자체로 늘 기쁨”이라고. 그에게서 투박하지만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최 씨는 아들이 어릴 때 유모차를 밀고 공원에 산책을 갔던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그가 수술을 한 뒤라, 아빠가 애를 본 게 아니라 애가 아빠랑 놀아준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미래에 손주가 태어나도 유모차를 밀고 산책을 가고 싶다며 웃었다.

최 씨는 91년도부터 교단에 선 29년 차 교사.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왔을 그인데 자식교육은 어떻게 했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교사이니 남다른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어릴 땐 원체 애가 순해서 ‘라이온킹’같은 비디오만 틀어줘도 좋아했죠. 그런 것만 틀어주고 키워서 그런가. 맞벌이기도 하고,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많죠.”  

순한 아들도 사춘기가 오자 남들처럼 성장통을 겪었다. 그때가 중2, 중3 때였으니,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말도 안 하고, 아버지라는 존재에 적대감을 드러냈단다. 아빠, 엄마, 아들 사이 삼각관계 균형이 깨져, 참다못한 최 씨는 캐리어를 싸 들고 일주일 간 가출(?)을 감행했다.  

“그 시기에 집에서 왕따를 당한거죠. 고민도 되고 속상한 마음에 캐리어를 끌고 나오기는 했는데, 갈 데가 없어서 우리 어머니 댁으로 갔죠. 일주일 버텼거든요? 아들이고 마누라고 전화 한 통 안 하더라고요. 결국 반 쯤 항복하고 집에 돌아갔죠.(웃음)”

다시 집에 돌아간 그는 대뜸 아들에게 캐리어를 싸라고 했단다. 그리고 부자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일주일간 아들과 둘이 여행을 떠났다. 서울의 고궁, 대기업도 구경하고, 서울 사는 동창들도 만났다. 둘이 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니 닫혀있던 아들의 입도 자연스레 열렸다. 

최 씨는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란다. 아이가 고등학교 가는 것, 군대 가는 것 등 자식 가진 부모가 겪는 일들을 그 역시 겪으며, ‘괜히 아이를 힘들게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요즘은 믿음을 가지고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둔다니, 아이가 크며 부모의 마음도 함께 커진 것은 아닌지.  

아들 이야기를 하던 최 씨는 자신도 나이 드신 어머니한테는 ‘걱정’이라며 웃었다. 

“어머니가 올해 아흔넷이신데, 아직까지도 저를 걱정하시죠. 우리 엄마의 걱정이 나에 대한 사랑 아니겠습니까.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지금도 밥 먹었냐, 뭐 먹었냐가 우리 어머니 제일 큰 걱정입니다.”

다 큰 어른도 부모 눈에는 언제나 아이로 보이는 게 아닐까. 또 어른들도 부모 앞에서는 아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   

“몇 년 뒤에 퇴직하면 집도, 절도, 목적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소망 때문일까,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떠난 자리에 한 조각 바람이 가볍게 살랑였다. 
 

#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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