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나무.

더위를 피해 산과 계곡으로 발걸음이 잦아지는 요즘이다. 얼마 전 숲친(숲속친구들)들과 지리산 뱀사골 계곡을 다녀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만해도 뜨거운 햇살을 빨리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는 순간 훅 밀려오는 서늘함에 허리에 묶었던 윗옷을 풀어 다시 입었다. 계곡물 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 했다. “야~정말 좋다!”는 감탄사가 연신 터졌다. 숨길수가 없었다. 계곡을 옆에 끼고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며 하늘을 덮고 있는 나뭇잎 사이에서 여러 종류의 여름 꽃을 발견했다. 함박꽃나무, 고광나무, 산수국, 둥근조팝 등 초여름에 우리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여름 꽃을 충분히 보고 즐기며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그때 숲친 한 명이 발걸음을 멈추고 선 곳에 모두가 모여들었다. 청록의 나뭇잎을 살짝 들추니 아주 독특한 모양의 꽃이 보였다. 박쥐나무 꽃이었다. 박쥐나무 꽃이라고? 나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을까 싶은 대표적인 나무이다. 우리 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첫눈에 반한 박쥐나무의 꽃. 한복 저고리에 다는 노리개 같기도 하고, 멋 좀 부릴 줄 아는 사람들의 귀에 걸리는 귀걸이 같기도 하다.

박쥐나무는 중부지방 이남의 숲 속에서 주로 자라는 키 작은 떨기나무이다. 세계적으로는 동아시아 온대지역에 분포한다. 꽃은 6~7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난 꽃대에 피며, 아래를 향하고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다. 긴 종모양의 꽃부리는 8개로 갈라지고 위로 돌돌말린 모양이다. 꽃이 작고 아래로 피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애써 커다란 잎을 들춰야 꽃을 볼 수 있다. 열매는 9월에 짙은 푸른색으로 익는다. 이른 봄에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어떤 미식가는 잎으로 장아찌를 만든다. 뿌리는 팔각근풍(八角楓根)이라 하여 한방에서는 진통제나 마취제로 쓴다. 박쥐나무의 다른 종류로는 잎이 단풍잎처럼 다섯 개로 깊게 갈리지는 ‘단풍박쥐나무’가 있다.
 
신비로움까지 간직한 독특한 모양의 꽃을 피우는 이 나무는 왜 박쥐나무가 되었을까? 사실 박쥐의 생태나 얼굴모양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니다. 이유가 싱겁다. 잎 모양이 박쥐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 같다 하여 박쥐나무가 되었다. 누구는 꽃송이의 모양이 박쥐가 동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도 한다. 솔직히 꽃송이가 박쥐를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잎 모양이 둥근 사각형이고 가장자리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게 날개 펼친 박쥐를 닮긴 했다. 박쥐나무의 잎을 들고 햇빛에 비춰보면 이러 저리 뻗은 잎맥이 마치 박쥐날개의 실핏줄을 보는듯하니 박쥐나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는 않다.

서양에서의 박쥐는 마녀와 함께 밤에 활동하는 악마 혹은 이중성을 지닌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박쥐처럼 굴지 말라”는 말이 있잖은가. 그러나 동양에서의 박쥐는 다산과 복을 주는 길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래서 옛 장롱이나 궤짝 등에서 박쥐를 모티브로 한 전통 문양 장식이 많다. 올해 박쥐나무를 보았으니 좋은 일을 기대해 볼까나? 한편 은거를 하거나 유배생활을 하는 선비들이 처량한 자기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이 박쥐나무를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름 꽃을 보고 돌아왔더니 정말 여름이 바싹 다가와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박쥐나무를 찾으러 산으로 가보자. 아이들 눈에도 박쥐처럼 보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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