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待(기다리다). 15×20. 2019.

분명 그 이름이 있었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쓰고 싶었던 이름이 있었다. 정갈한 예서체(隸書體)로 그 이름 석 자를 예전부터 나는 무척이나 쓰고 싶었다.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준 사람이 있었다.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해관계가 얽혔던 것도 아니었다. 명확한 사람에게 나는 명확하게 일로 보여 준 것 밖에는 그 어떠한 계기도 없었다. 바라지 않고 욕심스럽지 않게 일을 해낸 그것이 통했는지, 당시에는 ‘나라는 사람이 신뢰가 없진 않았나 보다’만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원공부를 계속하고 있었고, 서숙(書塾)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거나 사람들을 나의 유희재(游喜齋)로 초대하여 음식과 놀이로 서로 교류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고도 여력(餘力)이 있으면 기타를 둘러메고 다니며 세상 한바탕 질펀하게 잘 놀았을 뿐이다.

어느 날 약간의 앞면만 있었던 그분이 나를 찾아 오셨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곳에 동참하여 힘을 보태주기를 권하셨다. 손을 내저으며 “그 복잡한 곳에 왜 저를 끌어 들이십니까?”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전에도 누군가가 찾아와 밖으로 나와 달라 하였지만 그때는 화를 내며 단번에 말을 잘라 버렸다. 그분께는 지금까지도 내내 미안한 마음의 빚이 있다.

“저를 아끼시면 저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셔야지요. 잘 놀고 있는 예술가를 왜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해 다녔으니... 그렇지만 결국에는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라는 것이 젊은 서예가를 내버려 두질 않았고, 한 사람의 진심어린 격려가 나를 밖으로 나오게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내안에 누르고 있던 모든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전시를 통해 작업물들이 사람들 눈에 띄게 되어 이후에는 시 임용교지를 쓰는 서예가로도 발탁(拔擢)이 됐다. 

벌써 3년째 접어들었다. 임용장(任用狀)을 쓸 때면 혹시나 하고 기다려지는 이름이 있었다. 올해 그 이름이 적힌 문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아무도 모를 기다림이라는 것이 있다. 그냥 바라기만 하는 기다림이라는 것이 있다. 때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원래 그의 성정(性情)대로 오늘날까지 오셨나보다 여겼다. 

정성을 다해 먹을 갈고 붓을 가다듬었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 가니 한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이름자 앞에 수많은 직함을 가졌을 누군가의 퇴직소식을 들었고, 오늘 누군가의 승진명단을 받아 보았다. 세상은 영원한 것이 없어서 참 흥미로운 일이라 여기는 예술가의 심장이, 어쩌면 가장 엄숙해지는 시간이다. 짧은 문자로 축하를 전하는 대신 이렇게 글로써 감흥의 만감(萬感) 교차(交叉)를 적어 내려갈 수 있음도 글쟁이의 복이고, 그의 직함과 이름을 임용장이라는 교지에 붓으로 일필(一筆) 할 수 있음도 어느 서예가의 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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