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국.

둥글둥글한 수국 꽃이 여름을 부른다. 보라색, 하늘색 또는 분홍색이 어우러진 수국의 꽃송이가 마치 둥근 공 같다. 햇볕 잘 드는 따뜻한 곳의 집 대문 앞이나 작은 마당, 혹은 담장 옆에 풍성하고 아름다운 수국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수국을 만나면 꼭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요즘에는 공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수국은 범의귀과에 속하는 낙엽지는 나무이다. 꽃을 즐기기 위해 주로 심고 있지만 잎이 너무 무성한 탓에 초본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수국의 고향은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수국 꽃송이를 두고 ‘수구화(繡毬花)’라고 부른다. 해석하면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이다. 중국인들은 수국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왔다. 중국의 시인 백거이는 수국을 신선들이 사는 선상에 있는 꽃으로까지 여겼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수국은 이 중국의 수국을 기본종으로 하여 일본에서 만들어진 원예품종이다. 일본인들은 이 중국 수국을 가져다가 암술과 수술이 없는 새로운 종을 만들어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다. 

수국은 한 가지 꽃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통 흰색으로 피기 시작했다가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자색으로 변한다. 또한 자라는 곳의 흙 성질에 따라 꽃 색깔이 조금씩 달라진다. 흙이 알칼리 성분이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해지면 남색이 된다. 이러한 꽃의 특성 때문에 원하는 색깔의 꽃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땅에 첨가제를 넣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수국의 꽃말은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수국의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처럼 보이는 둥근 잎은 실제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게다가 암술과 수술이 모두 없는 무성화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래서 수국은 삽목을 해야 한다. 싹이 트기 전인 이른 봄, 지난해에 자란 줄기를 한 뼘쯤 잘라 모래에 꽂으면 뿌리를 잘 내린다. 

다행히 주변에 무성화의 수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습도 아름답고 열매도 맺는 ‘산수국’과 ‘탐라수국’이 있다. 요맘때 산에 가면 산수국을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서 연둣빛 산수국을 만났다. 가장자리에는 무성화를, 안에는 수술과 암술을 갖추고 열매를 맺는 연둣빛 진짜 꽃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큰 꽃의 무심함과 작은 꽃들의 앙증맞음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탐라수국은 한라산 1,000미터쯤 오르면 경사진 면으로 무리지어 피어있다. 탐라수국과 한라산 정상의 안개가 어우러진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수국의 학명에는 ‘otaksa’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원산지도 아니면서 일본 단어가 들어가 있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네덜란드 사람인 지볼드는 18세기 초에 해군 군의관으로 일본에 와서 식물학계에 크게 공헌을 한다. 그가 일본에 있는 동안 이 신비스러운 동양의 꽃, 수국을 몹시 좋아했고 이 나무에 학명으로 그의 일본인 애인이었던 오다키의 이름을 따 붙였다. 이 여인의 이름에 존칭을 붙여 오다카상이라 하고 이것이 오타크사(otaksa)가 되었다. 서양 사람들은 식물의 품종 이름에 연인이나 아내의 이름을 따서 곧잘 짓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자들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궁금하다. 오는 여름, 탐스럽게 핀 수국의 꽃을 보면서 더위를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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