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딸나무.

꽃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고 있는 작은 잎을 ‘총포조각’이라 한다. 우리말로는 ‘꽃받침 조각’ 또는 ‘꽃받침’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꽃을 받치고 있는 조각이다. 가끔 사진 찍을 때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찍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얼굴 받침 했던 두 손이 결국 총포인 셈이다. 보통의 총포는 그 역할에 맞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작고 볼품없어 눈에 띄지 않는다.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있으면 서양 노랑민들레, 곧게 선채 꽃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으면 토종 흰민들레로 구분할 때 언급되는 정도이다. 민들레의 꽃받침도 애써 꽃을 뒤집어 찾아야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산딸나무이다. 꽃이 한창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꽃받침이 한창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요즘 산딸나무가 한창이다. 

산딸나무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나무이다. 주로 산에 살면서 딸기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산딸나무. 네 장의 하얀색 꽃잎이 십자 모양으로 피어 청초함을 더해준다. 그러나 당연 꽃이려니 믿었던 순백의 하얀 꽃잎은 꽃이 아니라 총포조각이다. 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고 있다. 어느 지인은 ‘넉 장의 식탁보’라 하고, 또 누구는 ‘흰 꽃 바람개비’라 한다. 보는 사람의 수만큼 아름다운 애칭이 나올 것 같다. 그들에게 잎이 변형된 꽃받침이라고 말하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꽃은 어디에 있을까? 산딸나무 꽃은 4개의 총포조각 한가운데에 4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을 가진 둥근 모양의 연한 노란색을 띠고 있다. 존재감이 없어 슬픈 산딸나무 꽃이여!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찾을 수 있다. 가운데 작은 꽃과 하얀색 꽃받침이 어우러져 전체 꽃처럼 보인다. 

꽃도 아닌 것이 꽃 행세를 한다고 하겠지만 사연이 있는 듯하다. 산딸나무의 진짜 꽃과 총포는 서로를 위해 역할을 나눈 게 아닌가 싶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이면 숲은 초록으로 더욱 짙어진다.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숲에서 늦게 꽃을 피우는 나무는 어지간해서는 벌과 나비를 불러올 수 없다. 작고 볼품없는 산딸나무 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둥근 작은 꽃 옆에 총포를 큰 꽃잎처럼 변장시켜 진짜 꽃인 양 위장을 한다. 생존을 위한 지혜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산딸나무를 특별히 신성시한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고난을 받으실 때 메고 가신 십자가가 바로 산딸나무로 만들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다시는 십자가를 만들 수 없도록 하느님이 키를 작게 하고 가지도 비꼬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모습을 상징하는 +자 꽃잎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문헌에 기록되어 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온 것 같다. 산딸나무의 목재는 재질이 단단하고 곧으며 무늬가 좋아 조각이나 악기 재료로 이용된다. 

산딸나무는 산기슭이나 산골짜기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이지만 요즘에는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봄에는 작은 꽃을 품은 하얀 포를 꽃처럼 감상하고, 가을에는 딸기 같기도 하고 수류탄 같기도 한 붉은 열매를 맛보자. 딸기 맛이 나려나? 궁금해진다. 산딸나무 종류로 외국에서 들여온 ‘서양산딸나무’가 있다. 산딸나무와 닮았지만 총포조각의 끝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는 게 차이점이다. 열매 모양도 다르게 생겼다. 앞으로 산딸나무를 만나거든 순백의 총포조각 속의 진짜 꽃을 꼭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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