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진주 방화·살인 사건으로 살피는 우리 사회 ‘안전’

조현병 앓은 안인득…“하지만 강제 입원시킬 수 없었다”
8번 신고에도 막지 못한 경찰에 쏟아지는 이유 있는 비난
‘묻지마’는 ‘사회병리적 범죄’…취약계층 지원관리 높여야

사천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진주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17일 새벽 4시 25분께,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이 일로 열두 살 초등생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할머니 등 5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이른 바 ‘묻지마 범죄’요, ‘묻지마 살인’이었다.

인구 5000만 명이 넘게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누군가 목숨을 잃는 사건사고는 매우 잦다. 그 중엔 신문과 방송의 한 꼭지 뉴스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간의 눈길을 끌지 못한 죽음도 흔한 편이다. 이런 경우든 저런 경우든, 대개는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묻지마 살인’은 다르다. 특별한 개인적 원한이나 갈등이 없음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상상.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집단화 되는 분위기다. 그 공포감은 여성과 아이 등 상대적 약자들에게 더욱 크게 작용한다.

이번 진주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안인득(42)이다. 경찰이 심사위원회를 열어 피의자의 이름‧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함으로써 알려졌다. 경찰이 밝힌 안인득에 관한 또 다른 정보는 그가 정신병의 일종인 조현병을 앓은 병력이 있다는 점이다.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병이라 불리던 질환으로, 뇌에 문제가 생겨 사고, 감정, 지각, 행동 등 인격의 여러 측면에 걸쳐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병이다.

조현병. 그러고 보면 ‘묻지마 살인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2016년 5월에 발생한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도, 2018년 10월에 일어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도 가해자는 조현병을 앓은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일로 조현병 환자 관리에 다시 한 번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 국민청원방 등엔 조현병 환자 등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심신미약 감경’을 없애야 한다거나, 조현병 환자의 강제 입원이 가능하도록 법을 고쳐 달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아예 모든 조현병 환자의 격리를 요구하는 글도 있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모두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공격적 행동을 하는 환자가 있긴 하나 드문 편이고, 꾸준한 치료로서 관리해 나갈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일반적 반응이다.

안인득의 경우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68차례에 걸쳐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치료를 중단했고, 치료 중단 33개월 만에 끔찍한 사고를 일으켰다. 문제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본인이 치료나 정신병원 입원을 거부함으로써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이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신질환자를 정신의료기관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로는 보호입원·행정입원·응급입원이 있지만 세 가지 모두 2명 이상의 전문의 진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안인득의 경우 병원 가기를 거부함으로써 가족들도 전문의 진단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도 안인득으로부터 큰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죽했으면 안인득의 어머니가 엄벌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경찰이나 공권력이 안인득을 강제 입원 시키는 방안은 없었을까. 이를 두고 아쉬움을 쏟아내는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안인득의 이웃들이 지난해 9월 26일부터 올해 3월 13일까지 8번이나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이렇다 할 조치를 받지 못했다. 경찰은 증거불충분 또는 피해상황 없음을 이유로 들었다.

물론 특정인에 대한 강제 입원 조치는 경찰로서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자칫 인권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웃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 되풀이됨에도 이를 지켜만 본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정신적 문제로 반복적인 이상행동을 한다면 다른 기관‧단체와 협력해 강제 치료를 받게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 민갑룡 경찰청장이 “경찰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짚어보겠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 청장이 “(이번 경우처럼)반복적 위협행위 신고에 대해 일제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으로 LH 임대아파트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이는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다수 이용하는 이 아파트에 혐오감을 부추기는 행위로 적절치 않은 태도다. 오히려 ‘묻지마 범죄’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 등 구조적 문제가 포함돼 있는 만큼 ‘사회병리적 범죄’로 인식하고 취약계층 지원과 관리를 강화해야 옳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웃도시 진주에서 일어난 끔찍한 범죄가 사천에서든 어디서든 재발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쩌면 모든 시민들이 같은 바람일 테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답 찾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문제풀이의 기본은 늘 올바른 현실 인식과 진단에서다. 그런 점에서 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발간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 논문에서 “묻지마 범죄 증가는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경고”라고 진단한 대목을 다시 새겨봄직하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