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 에일리언을 닮으려 하는가?"

▲ 삼천포중앙고 이철현 교사
교육부가 조전혁 국회의원의 끈질긴 요구로 수능성적을 공개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97년에 상영된 ‘에일리언 4’가 생각났다. 여기에는 죽은 리플리를 복제하여 에일리언을 부활시킨 과학자가 나온다. 그는 난생을 하던 퀸에일리언이 포유동물 - 정확히는 인간처럼- 태생으로 낳은, 에일리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새끼를 보고 외친다.“ beautiful! ” 만약 그것이 정말로 현실이라면 그야말로 끔찍한 악몽이 될 그 괴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과학부차관과 조전혁 의원이 그 과학자와 겹치는 것은 왜일까?

알다시피 이주호 차관은 MB정부 교육개혁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주요 입시과목(국어, 영어, 수학)의 비중을 늘리고 예체능 교과를 축소,퇴출하려는 ‘미래형교육과정’, 학교성적 공개를 통한 서열화, 이를 통한 ‘고교선택제’, 모두가 이 차관이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라는 자신의 책에서 주장하던 것들이다.

여기에 조전혁 의원은 일찍부터 수능성적 공개를 요구해온 사람이다. 교육부가 조 의원에게 연구 목적으로 쓰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건네준 수능성적자료는 보기 좋게 조선일보에 공개되었다. 조선일보는 학교코드를 추적, 150여 학교를 파악하여 성적순으로 명단을 공개했다. 고교서열화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던 교육부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차관의 바람대로 이번에 친 일제고사의 학교성적이 공개되는 것이다. 조만간에 전국 초중고등학교가 성적순으로 서열화될 것이다. 이주호 차관과 조전혁 의원이 바라는 것이 진정 이것인가?

교육개혁 원조 영국도 일제고사, 성적공개 폐지

이 차관이 모델 삼은 미국은 전국의 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해 성적을 비교하던 낙제학생방지법(NCLB)을 수정하려 하고 있다. 이 차관 교육개혁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도 일제고사를 폐지하거나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하였다. 당연히 성적공개는 폐지되고, 교내평가로 한정하였다.

영국은 80년대 말 보수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실시하였다. 대처 정부는 경기 침체의 원인을 ‘학력 저하’로 규정해 ‘경쟁과 선택’이라는 시장주의와 경쟁의 원리를 학교에 도입했다. 학생들의 표준학업성취도 검사를 도입해 학교 간 성적 순위표를 공개했으며,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주었다. 일제고사는 공/사립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낮은 순위의 학교들은 이름이 공개되었다.

언론에 의해 ‘학교명 공개로 망신주기’(Naming & Shaming)라 이름 지어진 이 정책은 학교선택제와 맞물려, 부유층과 중간층의 자녀들은 사립학교와 공립문법고등학교로 몰렸다. 이 학교들은 비싼 등록금(1년에 2천만원-4천만원)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재정지원으로 더욱 양질의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중하류층의 아이들이 다니는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은 주변지역의 슬럼화와 함께 재정압박으로 무너졌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이른바 ‘똥통’학교가 되었고 많은 학교들이 폐교되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학교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각 학교들은 ‘부진아’를 골라서 퇴학시키고,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방치된 학생들은 학업을 포기하여 대처정부 시절만 퇴학생이 5배나 늘었다.

▲ 영화에일리언의 한 장면.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뒤쳐진 학교들은 대부분 하층민이 사는 지역의 공립학교들로, 이들은 교육 시장의 낙오자로 버림받았고, 이 같은 방관과 무관심의 결과 미국 전체 고등학교 1학년의 중퇴자가 30%에 이르게 되었다. 일제고사와 학교간 성적 공개의 결과는 전국의 학교를 비싼 등록금을 부담할 능력이 있는 상류층의 ‘꽃·남’ ‘아가씨’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와 그럴 능력이 없는 중/하류층 학생이 다니는 3류 공립학교로의 양극화다.

소득과 학교간 입학 상관 관계는 학부모의 직업분포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서울 시내 외고일반고전문계고 신입생 아버지가 상위직인 경우는 외고와 일반고는 각각 44.8%, 13.!%에 달하는데 전문계고는 고작 3.7%였다. 아버지가 하위직인 경우는 각각 11.1%, 28.4%, 32.3%로 역순을 보였다.(시사 iN, 2009.10.17.) 결국 수능성적 공개, 일제고사 성적 공개를 통한 학교서열화는 그 학교 학부모의 경제력을 서열화한 것에 불과하는 얘기다. 경제적 양극화가 교육의 양극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 경제양극화에 따른 교육양극화

경제양극화에 아우른 교육양극화는 미국과 영국처럼 경쟁에서 낙오한 학교들의 슬럼화, 그에 따른 중도탈락자 증가를 의미한다. 8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한해에 대략 8만여 명의 중·고등학생이 중도탈락하고 있다.(교육통계연보,1996) 2008년의 경우 질병을 제외한 중도탈락자가 30,769명으로 2006년에 비해 9,000명이 늘었다.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전문계(실업계) 고등학교는 전체 평균의 2배, 특목고에 비해 4.3배나 높다.

웬만한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을 못하는 형편인데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아이들이 변변한 직장을 가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이와 대비되어 상류층의 ‘꽃·남’과 ‘아가씨’들은 서열의 맨 꼭대기에 있는 학교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아 부모의 권좌를 물려받을 것이다. 우석훈이 <괴물의 탄생>에서 경고한 일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중간층이 몰락한 남미의 8자형 사회가 바로 그 괴물이다. 상위 20%가 재화의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80%가 20%의 재화를 놓고 싸우는 약육강식의 정글사회,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면 ‘City of God'란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도 아니고 에일리언도 아닌 그 괴물을 두고 “beautiful"이라 감탄하는 과학자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 그의 미적 감수성은 끔찍할 정도로 도착적이다. 내가 MB정부의 교육개혁 드라이브가 소름끼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1)

이철현 삼천포 중앙고등학교 교사

*이 글은 뉴스사천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1) 글을 여기서 끝내려 했는데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일제고사 결과 드러난 영국 학교간 학력 격차의 비밀은 정작 딴 곳에 있다. 일류 학교의 높은 성적은 그 학교의 질 높은 교육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성적 좋은 학생이 그 학교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란 것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고 영국의 닉 데이비스라는 기자가 영국 교육 현실을 분석한 <위기의 교육>이란 책에 그렇게 실려있다. 한국 사회에서 소도시의 사립학교들이 학력이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