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기다렸다는 듯 개학과 동시에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바로 개나리보다 일찍 깨어나 봄을 알려주는 산수유와 생강나무이다. 마을 들녘에서도 본 듯한데 산에 오르니 노란 꽃이 또 피어있다. 십중팔구 마을에서 봤다면 산수유일 테고 산속에서 봤다면 생강나무일 것이다. 완전 다른 집안의 나무인데도 산수유와 생강나무를 같이 언급하는 것은 꽃 피는 시기도 비슷하고 둘 다 노란색 꽃을 소복하게 피워내는 터라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다란 꽃자루 위에 우산살처럼 노란 꽃이 활짝 펼쳐져 있으면 산수유 꽃이고, 꽃자루 없이 목을 움츠린 채 가지에 딱 붙어 있으면 생강나무 꽃이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갈잎작은키나무이다. 중국이 고향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1920년대 우리나라 중부지방 경기도 광릉에서 일본인 식물학자에 의해 산수유 거목 두세 그루가 발견되었다. 그 뒤 우리나라 학자들이 우리나라가 자생지임을 확인함으로써 이제는 우리 나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옛부터 우리 조상들의 삶과 함께 해온 친숙한 나무이기도 하다. 문헌으로는 <삼국유사>에 신라 경문왕(861~875) 때 처음 등장한다. 밤이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들리자 임금님은 대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새로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산수유이다. <산림경제>라는 책에는 산수유를 두고 ‘2월에 꽃이 피는데 붉은 열매도 보고 즐길 만하며 땅이 얼기 전이나 녹은 후에 암 때라도 심으면 된다’고 적혀있는 걸로 보아 이미 오랜 전부터 집 주변에 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산수유에는 추억이 깃들여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등장했던 ‘성탄제’라는 시 때문이다.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어느 겨울, 병에 걸린 어린 아들을 위해 아버지께서 눈을 헤치고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 와 아들에게 먹인다.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열이 오른 자신의 볼을 비비며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어른이 되어 그 때를 추억하는 내용의 시이다. 가을에 맺히는 붉은 열매가 겨울까지도 매달려 있어 아버지는 한겨울 쌓인 눈을 헤치고 열매를 따 오셨다. 그 붉디붉은 열매를 산수유라고 부른다. 산수유는 맛이 시고 떫지만 아주 중요한 약재로 쓰인다. 한약방에 가면 산수유라고 적힌 약서랍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시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산수유는 열을 낮춰주는 해열제로 쓰이고, 비뇨기·신경계 질환에 효험이 있으며 강장제로도 많이 쓴다. 산수유를 ‘대학나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이 나무 세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하여 붙은 별칭이다. 산수유가 얼마나 약재로 긴요하게 쓰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산수유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아마 한번쯤은 가봤을 테고, 아직 못 가봤다면 한번은 가볼 것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 산지인 전남 구례 산동면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 중순에 산수유 꽃에 반할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멀리까지 갈 형편이 안 된다면 공원에 심겨진 산수유 꽃을 살펴보길 바란다. 요즘엔 꽃과 열매를 감상하기 위해 정원수로 많이 심고 있으니까. 산수유 꽃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노란 불꽃을 터뜨린 것 같은 꽃에 흠뻑 빠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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