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흔아홉의 청춘 -

▲ 아버지. 30×25. 2019.

 “아버지는요?” “남강 변에 골프 연습하러 가셨지” “이렇게 추운데?”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을 지나고 이순(耳順)을 바라보면서 뭘 하고 살았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고, 앞으로의 인생에 생각들이 깊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 전부터 세 개의 버킷리스트를 해치워 버린 내 아버지의 청춘을 들려주었다. 

 일흔일곱 되는 해 어느 날, 나의 아버지는 콧등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나셨다. 평생에 콧대가 서지 않은 게 스트레스였다고. 낮은 콧대로 평생을 살았으니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선 콧대로 살고 싶으셨다고 당당히 성형외과를 찾으셨다. 친정어머니는 늙어 별짓을 다한다고 눈을 흘기셨고, 난 아버지에게 애인이 생기셨는지부터 얼른 물어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머리가 덥수룩한 청년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누구세요? 가발을 쓰시고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늙은 마누라 버리고 다시 장가 가셔도 되겠다고 놀려댔다. 딸년이 혼서지(婚書紙)도 써 주고 축의금도 두둑이 준비 하겠다고 키득키득 웃어댔다. 머리카락이 조금 빠졌을 뿐인데 그 모습조차도 보기 싫다며 나의 아버지는 모자를 쓰시고 다니셨다. 거실에 계시다가 이웃집 손님들이 놀러 오면 급하게 모자를 쓰셔야 자존심이 서시는 분이셨다. 친정집을 가면 이젠 안방 화장대에선 어머니의 화장품은 서랍 속으로 밀려 있고, 아버지의 보물 같은 가발이 잘 빗겨져 자태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화들짝) 이런! 놀래라.”

 나의 아버지는 작년부터 골프를 시작 하셨다. 아직도 뛰어서 뒷산을 오르시는 체력의 아버지는 개인레슨 없이 골프를 독학중이시다. 연습장에 가면 프로들이 와서 천재적이라고 입을 대니 골프 뭐 별거 아니더라고 하신다. 친정집은 아버지의 골프채널 고정으로 이젠 드라마나 뉴스를 볼 수 없었다. 그러고는 버디! 굿샷! 나이스샷!을 외쳐대며 한밤중에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저 푸른 초원을 누비신다. 화초를 키우는 게 취미가 아닌 골프공을 수집하시는 게 일흔아홉의 취미생활이 되어 버렸다. 해외여행은 죽어도 싫다고 손사래 치시더니 요즘은 선생 하는 아들의 방학만 손꼽아 기다리신다. 필리핀, 태국... 아버지의 입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들이 예전에 늘어놓던 둘째딸 자랑보다 더 익숙해져 버렸다. 일흔아홉의 청년은 캐디 없이 무거운 골프 가방을 매고 다니며 필드를 누비신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 품어가 반길 이 없을세 글로 설워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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