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휴게소의 아침 풍경 -

▲ 쉴 휴(休). 30×25. 2019.

동이 터 오르기를 기다렸다. 우선 시동을 걸어 차안을 따뜻하게 데우고는 밤새 침낭 속에서 몸을 구겨 보냈던 잔상들을 정리하기 무섭게 나는 서둘러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텅 빈 도심 속 공원에서 살찐 비둘기들이 모이를 쪼며 겨울 아침 빈 거리를 뒤뚱거린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잔뜩 웅크린 채 이른 출근길을 재촉한다.

고속도로로 접어드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 콧노래 흥얼거리며 나는 남쪽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지만 금세 ‘아침에는 남으로 달리는 게 아님’을, 인상을 찌푸리며 깨닫게 되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가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이제 겨우 하루의 시작인데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온다. 선홍색 태양이 도로 옆 장엄하게 줄지어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불태운다. 차가운 겨울나무가 온기를 품어 아름답기는 한데 눈이 부셔 운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 여행길이 정해진 시간도 장소가 있는 게 아니니 가까운 휴게소로 빠져나와 잠시 아침 해를 피하기로 했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점포들이 즐비한 낯선 휴게소에서 나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차안으로 들어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었다. 김 서린 유리창 밖 세상이 영화관 스크린마냥 등장인물이 오고가며 바뀐다. 삼삼오오 새벽부터 떠나왔을 대학생 무리의 똑같은 검정 패딩 점퍼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타벅스 빈 컵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연인의 여자 하이힐이 뒤뚱거린다. 등산복 입은 남자가 어깨를 웅크린 채 담배연기를 진하게 뿜어낸다. 안이 보이지 않는 내 차 유리에 지나가던 남자가 푸석한 머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멋쩍었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서있는 중년남자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삭발한 남자의 민머리가 얼어 있다. 늙은 노부모를 부축하며 차에 태우고 있는 나보다 조금 젊은 여자를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부모가 있었지’ 생각했다. 점점 차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질 무렵 점포에 조명불이 켜지고 생기가 되살아난다. 하나 둘 들어오는 버스에서 색색의 사람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어느 휴게소의 풍경은 어떤 이는 들떠 있었고 어떤 이는 지쳐 있었다. 나처럼 멍하니 차 안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휴게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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