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어느 지역역사문화기행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 행사에서 맨 처음 간 곳은 세종대왕태실지와 단종대왕태실지였다. 그런데 두 태실지가 다 일반인의 무덤으로 되어 있었다. 동행한 해설사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할 목적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태실지를 경기도의 어느 한 곳으로 모으고 각지의 해당 태실지는 자기들 뜻에 맞는 사람들에게 암암리에 불하한 것 같다고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 결과 세종대왕 태실지는 어떤 연유를 거쳤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 자리를 한 개인의 묘지가 차지하고 있다 한다. 우리가 간 태실지는 원 태실지 관련 석물(石物)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그 산 밑 동쪽 언덕에 모아 정리해 놓고 세종대왕 태실지라고 궁색한 이름을 붙인 모양새였다. 

단종대왕 태실지는 아예 그 태실을 덜어낸 자리에 그 태실지를 불하받은 최 모라는 사람의 무덤이 들어앉았는데 그 태실지 보호석을 무덤의 보호석으로 그대로 사용한 흔적이 뚜렷하였다. 더구나 그 묻힌 사람은 일제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로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이 뚜렷이 올라있는 사람이라 한다. 그 비석은 태실지 무덤 바로 옆에 우뚝 서 무덤의 임자가 세상에 드문 재주를 가지고 온갖 덕을 베풀었다는 좋은 말로 가득한데, 정작 단종대왕 태실지 표지석은 그 형태도 온전히 갖지 못한 채 그 언덕 아래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다. 태실지란 왕실 후손의 출산 시 나온 태(胎)를 생명의 기운을 이은 신체의 일부라는 뜻에서 전국의 명당에 소중히 안치한 결과로 생긴 터를 말하는 것이다. 이 전국의 태실지를 훼손하여 한 곳에 모은 일제의 불온한 의도가 뚜렷한데도, 그 땅을 차지하고 사사로운 무덤으로 쓴 일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이 단종대왕 태실지의 일은 알고 보니 여러 사람과 언론에서 이미 문제 제기를 수없이 한 일이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과거의 일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닥칠 환난(患難)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또 일제강점기에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근본이 서지 않으면 매사가 꼬이는 법이다. 앞의 일을 정리해 놓지 않으면 앞의 일이 관례가 되어 뒤의 일을 제대로 정리할 수 없다. 이미 알려진 이 일을 다시 제기하는 까닭도 이런 문제 제기가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두 태실지는 엄연히 나라가 주인인 땅이었다. 그 나라가 잠깐 망한 새에 일제가 그 땅을 마음대로 처분했다고 하여 민족의 스승으로 추앙되는 세종대왕과 그 손자인 단종대왕의 기운이 스민 유서 깊은 땅이 이처럼 훼손된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두 태실지는 마땅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고 만약 그 해결이 당장 어려우면 그 제반 사정을 널리 알리기라도 해야 한다. 두 태실지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고 그 자리를 개인의 무덤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라는 세대가 알도록 널리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우리 고장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정삼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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