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해가 바뀌었으니 2019년의 새 해가 떠오른 지도 벌써 여러 차례가 되었다. 흔히 새해가 되면 그 해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해돋이 행사가 각처에서 제법 성대히 열린다. 사람들 중에는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 같은데 굳이 오늘의 해에 의미를 더 두려는 행위가 어리석다는 뜻의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분명히 다르다. 우선 해가 뜨고 지는 시각부터 다를 것 같고 온도 차이도 적지만 있을 것이다. 어제와 똑 같은 해는 이미 영원히 없다. 마찬가지로 엄밀히 살피자면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은 어떤 사람에게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 해〔年〕의 첫 해〔日〕는 그 첫 번째의 오늘을 여는 해라는 데에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략 80년 전에 나온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는 “Tomorrow is another day.”였다. 직역하면 “내일은 또 다른 날일 테니까!” 정도겠지만 우리나라 영화관의 자막에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쯤으로 의역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주 오래 남는 명대사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이왕 지나갔으니 현재의 아픔은 모두 잊고 자고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미래를 기약하겠다는 다짐을 떠오르는 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멋지게 표현하였다. 더구나, 단순한 내일이 아닌, 그 해의 첫 해를 맞아 스스로 하는 다짐은 누구라도 가질만한 것이지 않을까.

짐작컨대 옛 선비들은 새해를 맞아 대학(大學)이라는 책에 나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을 다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말은 대략 3,600 년 전의 사람인 은나라 탕 임금의 세수하는 그릇에 새긴 말, 즉 반명(盤銘)의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지금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리라는 다짐을 하는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 글을 알고 읽는 사람들이니 선비가 따로 없다. 하지만 참 선비는 이 날로 새로워지고자 하여 성실히 실천하는 사람 중에 있을 것이다.

옛 사람 중에 글을 모르는 사람은 어땠을까. 그 사람들은 유식한 글귀가 아니라 일상의 말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그 마음에 새긴 말로 어른 모시고 아이들 위하는 데에 모르긴 해도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더 공을 들이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글을 몰라도 셈이 틀리는 법이 없었고, 그 셈의 결과를 마음에 담아 어긋남이 없었다. 한 번 뱉어 약조가 된 말은 서로가 어김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이 글 모르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새해를 맞아 올해 실천할 말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 진정성은 글 아는 사람에 뒤지지 않았지 싶다. 그 마음에 새긴 말도 십중팔구 ‘날로 새로워 짐’으로 묶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올해와 작년과 내년은 당연히 더 다를 것이다. 이 다름에 편승하여 새로움을 찾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 새해를 맞으며 가진 돈의 무게와 앎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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