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를 보낸다. 며칠 남지 않은 2018년이다. 돌이켜보면 새 천년을 맞는다고 지자체마다 여러 행사를 경쟁적으로 벌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그새 그렇게 지났다. 이제 연도를 적을 때 낯선 2019를 적어야 한다. 이 숫자에 익숙해지려면 잘못 쓴 2018을 몇 번이나 지워야 될까. 

이맘쯤 누구나 가질법한 생각으로 몇 가지 우리말을 골라 보았다.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새로움이 그것이다. 

아쉬움이란 지난 세월 동안 있었던 일의 결과에 만족을 하지 못하는 심정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사람마다 헛되이 보낸 일 년, 못다 이룬 일 있는 세월, 잡힐듯하다 놓친 성공이 왜 없겠는가. 그 많은 아쉬움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려 보자고 망년회라는 것도 생겼을 것이다. 굳이 모여 하는 망년회가 아니더라도 나 혼자서도 몇 번이고 그 망년회를 하지 않는 생각 무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그 일을 즐길 시간을 가졌으면 그것으로 대충 족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큰 병에 걸리지 않았고 상대되는 사람이 생사가 갈리지 않은 다음에야, 그 아쉬움이란 내년을 기약해 해결할 수도 있을 법하다고 마음을 조금 다스려 보면 어떨까. 

그리움이란 사람을 착하게 하는 것이다. 그 그리움의 대상으로는 사람이 으뜸이다. 인연의 중함이야 부모형제가 그 첫째일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세상 살다 보면 그 부모형제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 중 특별하게도 잊히지 않는 인연이 있게 마련이고, 그 인연을 소중히 하여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 떠올려 보는 일은 사람을 필경 착한 곳으로 이끈다. 굳이 사람의 본성을 선악으로 가려 논하지 않더라도, 아무리 악한 사람도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그 일과 그 일에 함께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꼭 올해 생긴 일에서가 아니더라도 그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그리움의 감정은 이맘때, 해가 바뀔만하면 대체로 어느 순간 우리에게 오기 마련이다. 그 감정이 오지 않는다면 하루 날을 정해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리움의 날, 별 뜻 없는 망년회의 끝없는 술판보다야 만 배 낫지 싶다. 거듭 말하지만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이 순간이 우리가 가장 착해지는 때다.

새로움은 아쉬움과 그리움의 강을 건너 느리게 온다. 새로움은 새로워지자고 책상머리에 백번을 적어놓는다고 해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아쉬운 일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그 일의 성공을 함께 빌어준 사람과, 마음에 남아 그리움의 대상이 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키운 마음의 다음 가는 곳이 새로움의 터일 것이다. 그리움이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새로움도 사람이 이룰 일이다. 한 해를 보냈다면 그 한 해만큼 더 사람다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마다 이 새로움의 날개를 달고 나타날 2019년을 기대해 보자. 

▲ 정삼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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