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길을 묻다, ‘대학과 지역의 만남’⑤

지방자치시대, 도시의 경쟁은 치열하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가족(=시민)이 늘어나니까. 공교롭게 대학도 무한 경쟁이다.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생존을 걱정하는 곳이 여럿인 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 했던가. 지역사회와 대학이 위기 극복을 위해 손을 잡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사천에서의 ‘대학과 지역의 만남’ 그 가능성을 탐색해본다. / 편집자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지방소멸’

‘인구절벽’, ‘지방소멸’.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단어들이 널리 쓰이는 세상이다. 비슷한 개념으로만 여겼던 ‘지방분권’과 ‘지방 균형발전’을 두고서도 이견이 생긴다. 크고 작은 지방정부의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기에 유‧불리도 제각각인 탓이다. 지방자치시대에 자치단체들이 헤쳐가야 할 길이 그만큼 험난함을 보여준다.

뉴스사천은 이런 배경 속에 ‘대학과 지역의 만남’을 주제로 몇몇 국내외 사례를 살폈다. 대학과 도시의 상생 전략을 소개함으로써 지역사회가 사천에 맞는 상생협력 방안을 찾길 바라는 뜻에서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 지방자치제가 뚜렷이 자리 잡은 북유럽의 핀란드와 스웨덴 사례를 사천시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겠으나 맥락과 줄기를 좇기엔 충분하리라 봤다.

서울시에선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을 들여다봤다. 대학을 뜻하는 유니버스티(University)의 ‘유니버(Univer)’와 도시를 뜻하는 ‘시티(City)’를 결합시킨 ‘유니버+시티(Univer+City)’라는 새로운 단어의 재해석을 통해 지역과 대학의 상생 발전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학이 고등교육의 터전이라는 일반적 역할 외에 지역 상권의 혁신 거점이자 청년문화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서울시가 재정을 지원하는 이 사업에 동참의 뜻을 밝힌 대학만 48개. 그리고 2017년 이후 지금까지 14개 대학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나아가 내년까지 32개 대학으로 널리고, 2025년까지 60개의 캠퍼스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의지다.

핀란드에선 대학의 혁신을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세계적 휴대폰 생산업체 ‘노키아’의 쇠락으로 위기감을 느낀 핀란드는 고급 인력을 새로운 창업으로 유도했다. 대학도 마찬가지. 지방정부 소유의 여러 대학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뿐만 아니라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 진행에 힘을 쏟고 있었다.

아예 대학을 중심에 두고 도시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스웨덴도 지역사회가 대학과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핀란드와 비슷했다.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창업 천국’이었다. 그 밑바탕에는 산‧학‧정의 강력한 협력 네트워크가 작용하고 있었다.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는 ‘일렉트룸’이, ‘웁살라 혁신센터’는 ‘스툰스’가 재단 격 역할을 하며 지역혁신을 지휘했다.

‘항공’ 기반 산학협력 치중한 사천시

‘대학과 지역의 만남’을 통한 지역혁신, 우리도 가능할까? 이제 이런 물음을 스스로 던질 차례다.

인구 12만의 사천시에는 큰 대학이 없다.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가 있으나 규모면에서 너무 작다. 관할하는 곳도 교육부가 아닌 고용노동부로서 일종의 직업훈련기관 성격이 짙다. 이런 이유로 대학을 활용한 지역혁신을 고민하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 사천시와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의 협업으로 진행된 2018 공무원 항공전문가 양성과정 운영 모습.

그럼에도 사천시와 항공캠퍼스는 나름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해마다 항공기술인력양성사업이란 이름으로 대학생이 아닌 일반인에게 항공기체 제작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수강생에겐 취업을, 기업에겐 인력난 해소를 도운 셈이다. 이 과정에 사천시가 지원한 비용은 5000만 원으로 그리 크지 않다. 이밖에 항공과학영재교실 운영에 5000만 원, 공무원 항공전문가 양성과정 운영에 2000만 원을 지원한다. 공통점이라면 수강생을 항공캠퍼스로 불러 대학이 지닌 전문가와 교육 장비를 활용해 가르친다는 점인데, 경제 유발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대 시민 서비스에 가깝다.

올해 사천시는 항공캠퍼스 외에 경상대 항공핵심기술선도연구센터 운영에 1억 원, 경남과기대 K-ICT 3D프린팅경남센터 운영에 1억2000만 원, 창의융합형 공학인재 양성시스템 구축 명목으로 경상대와 경남과기대에 각각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삼천포공고 항공조선분야 마이스터 양성 과정에도 1억 원을 지원한다. 또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경남도가 세운 경남테크노파크 항공우주센터에 지원단 운영비와 수출컨설팅, 연구장비 구입 등의 목적으로 13억7500만 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사천시는 항공산업을 매개로 산‧학‧정(관)을 구축한 가운데 재정 지원도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시로선 ‘열악한 재정 여건 속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대학을 끌어들여 지역의 혁신을 꾀하는 정도의 수준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기존의 사업에서 한두 걸음 더 들어가는 전향적 사고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협력 파트너·분야 확장 필요

첫째는 협력 파트너의 확장이다. 사천시가 큰 대학을 지니진 못했으나 지척인 진주시에 6개의 대학이 밀집해 있다. 이 가운데 국립대학만 3개다. 비록 지방자치단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없는 구조이긴 하나 공공성이 강한 대학인만큼 협력을 꾀할 명분은 충분하다. 물론 사립대학들도 재단과 총장의 의지에 따라 지자체와의 협력이 더 원활할 수 있다. 또 인근 남해군에는 경남도립 남해대학이 있음도 기억하자. 대학의 특성과 지리적 여건 등을 고려하면 교류와 협력의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둘째는 협력 분야의 확장이다. 우리나라 항공기 제조 부문의 70%를 경남이 맡고, 그 가운데 70% 이상을 사천이 맡고 있으니, 항공산업이 사천을 대표하는 산업임은 숨길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항공산업에 기대어 사는 사람은 소수며, 사천시민들의 관심사는 각양각색이다. 직장은 사천에 있으면서 거주지는 사천 이외에 두고 있는 노동자들도 부지기수다. 주택,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등 삶의 질을 규정 짓는 여러 분야에서 부족과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영역까지 협력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 경상대학교 전경.(사진=경상대학교 홍보실)

협력 파트너와 분야의 확장. 이를 두고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경상대다. 경상대는 경남의 거점 국립대학일 뿐 아니라 사실상 서부경남의 중추대학이다. 풍부한 인적자원이 있고, 다루는 학문의 영역 또한 넓다. 같은 국립대학인 경남과기대와 통합 논의도 일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경상대가 지역사회와의 협력에 관심이 있느냐는 점인데, 대학본부 차원에선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23일 만난 이상경 총장의 말이다.

“사실 지금까진 대학과 지역의 상생 노력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정부차원의 요구로 프로젝트사업 같은 걸 했지만 지자체의 매칭 펀드가 끊기면 이전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턴 정부 의지가 더 강하다. 실제로 사업비도 더 줬다. 대학이 지역을 위해 뭔가 하면서 풀어라는 얘기다. 경상대도 그럴 준비가 돼 있고, 산학협력단이 노력하고 있다.”

‘귀찮다’며 꺼려온 대학과 지자체

이 총장의 얘기처럼 경상대는 2012년부터 5년간 진행한 링크(LINC)사업에 이어 2017년부터 링크플러스(LINC+)사업을 진행 중이다. 링크사업이란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을 도모하는 사업으로, 교육부 입장에서 보면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 사업’이다. 링크사업의 심화단계인 링크플러스사업은 산학협력을 넘어 지역사회와 상생‧융합발전을 꾀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개념이다.

경상대는 이 사업에 따라 해마다 40억 원 안팎의 예산으로 △지역상생형 산학협력 체제 구축 △창의‧인성 인재 양성 △지역-대학 동반성장을 위해 힘을 쏟는다. 하지만 지금껏 드러난 모습에서는 이전의 링크사업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느낌이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지역혁신센터다.

▲ 경상대학교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LINC+ 육성사업단 산하 지역혁신센터의 비전 개념도.

지역혁신센터는 지역사회 공헌 산학협력 프로그램 운영·지원으로 지역사회 혁신에 이바지하는 기구로서 대학-지역사회 협의체 구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 대학과 지역의 협력과 소통을 위한 기초단위인 셈이다. 이를 통해 대학과 지역이 더 가까이 다가서고 서로 상생하는 계기를 만들어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경상대에서 대학과 지역의 협력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이종호 산학협력정책연구소장(지리교육과 교수)은 대학과 지역 두 주체의 반성도 촉구한다.

“정부는 지역사회와 연계한 협력사업을 하라며 지원금을 주지만 현실은 어렵다. 교수들이나 지자체 공무원들 모두 ‘귀찮다’는 이유로 꺼리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용역업체를 통한 접근 방식을 여전히 선호한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처럼 NGO의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 어렵다. 백그라운드가 약하다.”

서부경남이 비교적 변화에 둔감한 지역이고, 여기에 파장을 일으킬 시민사회 목소리 또한 약한 편이어서 이 소장의 지적은 충분히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제도의 틀은 있으나 이를 활용할 사람들이 준비가 덜 된 상황이다.

가까이 온 ‘대학과 지역의 만남’

그렇다면 사천시는 어떨까. 최근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잇따라 선정·발표되면서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변화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사천읍권역도 읍시장을 중심으로 활력 되찾기에 분주하다. 한때 군소재지였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곤양면민들도 지금보다 더 나은 곤양의 미래를 늘 갈구하고 있다. 시민의 관심은 충분한 편. 여기에 송도근 사천시장도 대학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편이다.

“교육자치가 되고 있는 핀란드·스웨덴과 비교하긴 그렇지만, 대학과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만나 새로운 힘을 일으켜야 함은 틀림없다. 우리 시도 지금까지 대학들과 협력이 없었던 건 아니나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특정 대학을 특정 지자체에 가둬놓을 필요도 없겠다. 좋은 아이디어로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 생각이다.”

26일 만난 송 시장의 얘기다.

이제 ‘대학과 지역의 만남’은 가까이 와있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있으니 지자체가 굳이 큰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 의지의 문제요, 아이디어 싸움이다. 경상대 외 경남과기대도 링크플러스 일환의 사회맞춤형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와도 전혀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고민거리를 배움의 주제로 삼는 대학, 그 고민거리를 해결하며 학점을 따는 학생, 고민 해결 학생에게 창업의 기회를 주는 지역의 선순환을 꿈꾸어 본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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