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차. 20×15. 2018.

2차선 시골길을 시속 30킬로로 밟아본다. 오가는 차가 없으니 이보다 더 한가할 수 없다. 굽어진 길을 돌아 막 속도를 올리려는 순간, 아찔하니 숨이 멎을 것만 같다. 페달 위 올려놓은 다리에 힘을 풀어 버린다. 산길자락 늘어진 주황다홍노랑 짙은 풀무더기.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가끔 가을이 보고 싶어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나무에 매달려 있던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하늘이 점점 크게 열리면 이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늘 보며 떨어지는 낙엽만을 애달아 아쉬워했지, 이렇게 길모퉁이 풀무더기가 조용히 제 색을 바꾸고 있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색색이 물감을 퍼부어 놓은 듯 그러다 마지못해 야위어가는 풀무더기를 보면서, 찬란한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 차려 버렸다. 이 짙은 가을이 동양화 물감과도 같다고, 천연에 검정의 묵(墨)을 섞은 듯 더욱 깊어지는 짙음은 참 미련스럽게도 슬펐다.

낙엽 수북한 가로수 길을 달린다. 내가 아주 소싯적에는 친구와 추억 쌓는 배경으로 이런 길을 사랑했었다. 온통 화려하게 바닥을 물들인 그 배경을 등에 지고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러대며 행복해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눈앞에 놓고 사색하며 걷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져 버렸다. 왜 중년의 남자가 가로수 벤치에 앉아 하늘을 향하여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는지를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이렇게 지나치고 있다는 것을. 차를 한가한 곳으로 세우고 툭툭 던져져 뒹굴고 있는 플라타너스 마른 잎사귀를 밟는다. 바스락 바스락...... 어쩜 이렇게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 버렸을까. 찬란했을 때 큰 잎사귀로 매미도 품어주고 아이의 소꿉 그릇이 되어 주던 플라타너스의 잎은 장렬히 전사한 시체마냥 바람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 곳이 신작로 어디쯤일까. 마을 어귀쯤 시골 외할머니 집을 기억하면 항상 기차굴과 함께 플라타너스나무가 있었다. 그 밑에서 뒹구는 마른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있었다.

십일월 어느 날, 때 이른 첫눈이 내려 전국을 뒤덮었다고 온통 소란들이다. 잠이 들기 전 내 핸드폰 속 세상은 모두가 가을을 보내고 있는 듯 노랗고 빨갛더니, 새벽에 눈 비비고 열어 본 세상은 온통 하얗게 뒤바뀌어 있었다. 화려함이 무채의 세상에서 허무하게 막을 내리듯. 아차! 내가 마음을 주지 못한 사이에 가을을 놓쳐 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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