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

정동에서 고성 가는 국도변에 감을 파는 분들이 줄지어 있고, 길 옆에는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들이 늦은 가을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다른 과일은 일찌감치 수확하여 팔리거나 저장 창고에 들어가지만 가장 늦게 추수하는 감이 있어 짧은 가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런 풍경은 정동이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감나무는 중국 중남부가 원산지로서 동북아시아에서 잘 자라는 온대성 과일나무이다. 감나무는 과일을 얻을 목적으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많이 심었으나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감 생산지가 위쪽으로 점차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 감나무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문헌에 기록된 것은 고려 중엽 이후이다. 감나무는 오래 전에 들어와 긴긴 세월을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가깝고 고마운 나무이다. ‘조율이시(棗栗梨柿)’로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이며, 늦봄에 피는 감꽃은 배고픈 시절 아이들의 간식거리였다. 홍시와 단감은 든든한 가을 먹거리이며, 볕에 잘 말린 곶감은 별미이자 한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저장용 간식이다. 비타민이 풍부한 감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고, 감꼭지를 달인 물로 딸꾹질을 멎게 했다. 목재는 한때 골프채의 머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고, 검은 줄무늬를 가진 속살 덕에 옷장, 문갑 등 가구재로 널리 쓰였다. 제주도에서는 감물을 들인 옷을 즐겨 입었다. 이렇듯 감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다. 사람들 가까이에 있으면서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 감나무. 감나무의 무한 나눔에 자극을 받았을까? 사람들은 배고픈 새들의 먹이라도 되라며 감을 다 거두지 않고 한겨울 까치밥으로 남겨 두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치면 감나무 잎을 빼놓을 수 없다. 옛 사람들은 단풍 든 감나무 잎에 시를 쓰면서 감나무를 예찬했다. 감나무 잎이 종이가 된다 하여 문(文)이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쓸 수 있으니 무(武)가 있으며, 감의 겉과 속이 모두 똑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아 충(忠)이 있다고 했다. 노인이 치아가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과일이므로 효(孝)가 있고, 늦가을까지 남아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다하여 오상(五常)이라고까지 감나무를 칭송했다. 그 밖에도 감나무 목재의 검은색, 잎의 푸른색, 꽃의 노란색, 열매의 붉은색, 곶감에 생기는 흰 가루의 흰색을 일러 오색(五色)이라 불렀다. 옛사람들의 감나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감나무의 특징을 잘 알고서 의미부여 했음을 알 수 있다.  
   
산에 가면 감보다는 크기는 작은데, 감을 닮은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야생 감나무라 불리는 ‘고욤나무’이다. 감나무랑 같은 집안이다. 속담에 ‘고욤 일흔이 감 하나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자질구레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큰 것 하나는 못 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떫고 씨투성이인 보잘 것 없는 열매를 맺는 고욤나무이지만 감나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나무이다. 감나무는 감의 씨로 번식하지 않는다. 고욤나무를 밑나무로 하고 감나무 가지를 잘라다 접붙이기로 대를 잇는다. 고욤나무가 감나무의 대리모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애환을 담고 있어서 일까? 거북등처럼 갈리지는 모양의 감나무, 고욤나무의 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리는 붉은 감은 우리나라 가을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기회를 꼭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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