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수확의 계절이고 풍요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가을의 정취는 가슴 속에 스며있던 옛 일을 들춰내고는 한다. 바빴던 한 시절을 보내고 이제 한숨을 돌리려는 것일까. 길어진 밤과 함께 아른거리는 그리움의 감정이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는 한다. 그런 중에 우리 귀에 친숙하면서도 이 그리움의 감정을 잘 실은 노래의 노랫말을 음미해 보는 일도 새 계절을 맞는 보람이 되지 않을까. 학창 시절에 배웠든지 아니면 자주 듣다보니 저절로 귀에 익었든지 간에 다 대충 아는 노래인 ‘동심초’와  ‘꿈’이다.

두 노래의 원 작자는 당나라 시대의 여성 시인인 설도(薛濤)와 조선시대의 여성 시인 황진이이다. 두 시인은 공교롭게도 둘 다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린 바 있던 기생 출신이며 각기 당대의 명사들과 사귀며 문명(文名)을 떨쳤다. 원래 설도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樂妓)였고 황진이 역시 기품을 잃지 않은 기생이었다고 전해진다. 직업이 그런지라 그들이 평생 만난 남성들은 각기 많을 법하지만 좋아하고 싫어하며 만남과 헤어짐의 운명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들도 그리움의 감정을 시로 표현한 것이 많고 문재(文才)가 남달랐던 만큼 좋은 작품도 많이 남겼다.
 
가곡 ‘동심초(同心草)’는 설도가 지은 ‘춘망사(春望詞)’ 제3수를 안서 김억이 번안(翻案)한 것에 김성태가 곡을 붙인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꿈’도 역시 김억 번안에 김성태 곡이다. 동심초의 뜻은 설도의 유명한 편지지를 가리킨다는 말도 있으나 매듭의 일종인 동심결(同心結)을 풀잎으로 맺은 것을 가리키며 두 사람의 마음이 맺어져 풀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원시(原詩)의 내용은 ‘바람에 꽃은 지려하고 만남의 기약은 아득하기만 한데 사람의 마음은 맺어지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고 있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을 김억이 번안한 시 는 다음과 같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곡 ‘꿈’의 원시(原詩)인 황진이의 한시(漢詩) ‘상사몽(相思夢)’을 직역(直譯)하면 대충 ‘꿈속에서나 서로 사모하고 만나련마는 내가 그대를 찾아가면 그대는 나를 찾아 떠났으니 원컨대 언젠가 밤의 꿈속에서는 같은 때에 같이 떠나 길에서 만나를 지고’쯤 될 것 같다. 이를 김억은 번안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따라 그임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임은 나를 찾으려/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유감스러운 것은 김억과 김성태 두 분이 우리 귀에 젖은 글과 곡을 많이 썼으나 일제강점기 말에 각기 변절하여 친일행각을 벌인 일이다. 그분들에게야 살기 바빠 그랬다는 변명도 있겠지마는 역사는 작은 잘못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을만하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