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저 더웠던 여름을 지나 9월도 가더니 어느새 10월이 되었다. 찬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고 낮의 매미소리 사라진 자리를 밤의 귀뚜라미 소리가 대신한다. 밤이 길어지니 아무래도 생각에 잠길 기회가 생긴다. 옛날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더 음미해 보고 기억을 더듬어 스쳐간 인연을 꼼꼼히 되새겨 봄직도 하다. 사람의 머리는 성능 좋은 컴퓨터보다 훨씬 편리해서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도 없고 몇 십 년 전의 일도 눈 깜짝할 새에 재생해 낸다. 그 좋은 머리로 이 선선한 기회를 그냥 보낼 것인가. 이 가을에 여무는 것이 곡식만은 아닐 것이다. 한 살 나이를 더 해 한 살 늙은 것이 아니라 한 살 더 여물어진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을날의 사색을 돕기 위해 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지난봄의 어느 날엔가 이 칼럼에서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를 소개한 적이 있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것이니 지금의 꽃이 진다는 이별이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마냥 슬퍼할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인내해야 하리라는 뜻을 노래한 시라고 해설을 붙인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슬프지만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이별의 기억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꼭 남녀 간의 이별만 아니라 지나고 보면 특히 슬픈 모든 인간사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그 인연 따라 성장하면서 내 영혼도 여물어 왔다. 낙화의 마지막 두 행인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처럼.

조병화 시인의 ‘가을’도 ‘낙화’와 같은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는 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한 편 그림을 보는 듯 해설이 필요하지 않는 시다. 짧으니 전문을 소개한다.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도 이 가을에 음미해 볼만한 시다. 역시 설명 없이 전문을 인용한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문정희 시인의 시 ‘가을 노트’는 아름다운 시다. 앞서 소개한 시들에 비해 감성이 다소 강하다. 해설은 역시 사족(蛇足)에 불과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두 연만 소개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시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도 읽을 수 있고 길이에 비해 많은 생각을 담고 있다. 인터넷에만 접속할 수 있다면 깊어가는 가을을 더 깊게 해 줄 시들은 많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