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 40×25. 2018.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그 여자는 소시오패스였어요. 그녀는 도리어 세상이 자신을 시기하고 가만히 두질 않는다고 말해요. 그러고는 가장 불쌍하고 착한 척하며 뒤로는 그런 일들을 벌려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낯빛을 바꾸며 사람들을 저렇게 현혹하고 있을 거예요”

몇 년 전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잠시 함께 했으며 화들짝 놀라 내 주변에서 내쳐 버렸던 참 기막힌 일을 겪게 되었다. 강자에겐 밑바닥 비위(脾胃)까지 다 맞추고, 약자에게는 자신이 무슨 상류계층마냥 눈을 내려 까는 참 몹쓸 여자였다. 그녀는 달콤한 혀와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와 나의 눈과 귀를 막았기에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들통이 나 버리고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 버린 그녀를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가차 없이 내 주변에서 지워 버렸다.

사람마다 다른 성정(性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 깨달았지만, 내가 남달리 외물(外物)에 잘 흔들린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다. 외부의 영향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성향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모르고 넘어 가도 되는 것들을 알아 버렸을 때는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한없이 말려들곤 한다.

어느 날,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를 나에게 물어 보았다. 눈에 어지럽게 보이고 귀에 흉흉히 들리는 외물(外物)에 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전사(戰士)도 아니면서 전사(戰士) 기질은 있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누군가 해(害)하려 하면 난 심하게 동공이 움직여 버린다. 내 눈에 옳지 않은 것이 보이거나 귀에 들리면 참을 수 없는 미움이 앞선다. 하지만 그 일을 겪고부터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었다. 나는 감정 움직임에 한 숨을 먼저 쉬고는 ‘얼음!’ 하듯 모든 감각을 굳혀 버리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도 멈칫, 보이는 것을 보고도 멈칫. ‘화를 내기에 앞서 저 사람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딸이겠지.’ ‘외로워서 누군가에겐 사랑받으려고 주변을 힘들게 하는 것이겠지.’ ‘저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어야 하는 어깨 때문일 거야.’
 
끓어오르는 분노의 수위를 조절하며 숨 한 번, 숨 두 번, 숨 세 번...... 하였더니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는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고, 한참 후에는 그때 참았던 숨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다. 화는 나만 내는 것이었지 상대방은 내 화를 못 느끼어, 후에 만났을 때 난 미안 해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되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많이 올라 갈수록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거라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평화로운 일이 아니었다. 실상은 잘잘못에 대한 구분이 더욱더 명확해지고 알아버린 것들이 많아져 오는 피로감의 역습(逆襲)이 될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숨 한 번, 숨 두 번, 숨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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