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觀(보다). 40×30. 2018.

후욱 훅. 뜨거운 열대야의 여름밤이다. 지친 에어컨은 밤새 바람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나는 한동안 미루어 놓았던 작업들을 대충 마음 편할 만치 풀어 놓았다. 더운 여름밤을 붓과 치열하게 다투었더니 짙푸르게 점점 여명이 밝아온다.

밤새 굳게 닫혔던 작업실 문을 열고 나왔다. 맨얼굴에 부딪혀 오는 그리 덥지 만은 않은 바람과 가벼운 아침 공기 냄새가 참 묘하게 다가온다. 어느 낯선 타국에서 여행자의 흥분에, 이른 잠을 깨어 거리로 나왔을 그때 공기만큼의 무게였다. 팔월 이맘때에는 항상 여행지에서 보냈던 탓이었을 지도 모른다.

새벽이라 더욱 예민해진 감각이 상기시켜주는 한 컷의 기억에 잠시 피식 웃었다가, 나는 차를 몰아 막 여명이 밝아 옅어지는 푸름을 뒤로 하고 한산한 새벽의 거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나지막한 베이스의 언어처럼 차분해져 버린 거리를 지나고 있다. 도로를 끼고 나란히 쳐다보는 유명 브랜드의 빵집이 한곳은 벌써 불을 밝히며 구수한 주황불빛이 새어 나오고, 또 다른 한곳은 이른 아침을 이스트 숙성 시키듯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거리의 가게마다에는 터질 듯 채워진 종량제 봉투들이 앞날 화려하게 분주했을 일상들을 빼곡히 담고선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하루 장렬했던 지친 일과를 쉬고 있는 듯 굳게 닫힌 문만큼이나 힘겨워 보인다. 저 문이 열리면 뜨거운 팔월의 태양이 또다시 작열하고 쉼 없이 하루를 달려야 하는 일상의 고단함이 기다린다.

화장기 없는 중년의 여자가 저 멀리 미리 와 기다리고 있는 승합차로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하루벌이를 할 것만 같은 나의 아버지를 닮은 남자가 가방을 메고 아무도 없었을 첫 거리를 걷는다. 작은 가방이 무거워 보이고 쳐진 어깨가 좁아 보이는 저 남자는 새벽에 눈 대강 비비고 일어나 아침밥을 거른 빈속으로 저리 터벅터벅 걷고 있을 것이다. 환하게 불 켜진 편의점 젊은 남자가 기지개 크게 펴고는 빈 거리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허리 굽은 노인이 빈 수레를 끌고 골목길에서 마주한 길고양이와 눈싸움을 한다.

이미 밝아진 마을 입구를 들어서니, 밤새 피었을 노오란 달맞이꽃이 풀벌레 수다스러웠던 지친 꽃잎을 포개어 수줍게 서 있고, 풀숲에 사뿐히 늘어진 분홍 나팔꽃은 밤새 접었던 꽃잎을 펼쳐 들고 아침을 깨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달맞이꽃과 나팔꽃이 나와 거리 사람들의 일상만치나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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