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상교 국민연금공단 사천남해지사장

공단의 민원실에서 고객을 상담하다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언젠가 자신을 버스기사라고 소개하면서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신 분과의 상담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연금을 청구하러 오셨는데 아직 정상적으로 연금 받을 나이가 아니었다. 지금 연금을 신청하면 연금이 적으니 가급적이면 정상적으로 연금 받을 나이에 청구하시는 게 유리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미 사전에 전화 상담으로 자초지종을 다 들어 알고 있다고 하셨다.

국민연금은 정상적인 노령연금 수급연령보다 최고 5년을 일찍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조기노령연금이라고 한다. 1개월에 0.5%, 1년에 6%, 5년이면 최고 30%까지 연금액이 적어진다.

그리고 압류가 안 된다고 하던데 맞는지도 확인을 하셨다. 국민연금은 법으로 연금에 압류 등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본인에게 지급되기 전까지만 효력이 있을 뿐이며 지급된 이후에는 압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입금된 연금액의 150만원까지는 압류할 수 없도록 안심통장제도로 수급자를 보호하고 있다.

무슨 일 때문에 압류를 당하고 있는지 걱정을 하자. 버스기사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모은 돈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어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척들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다며 그간에 힘들었던 사연을 들려주는데 얘기를 들으며 서류를 작성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그분을 보았다.
 
말씀을 하시는 내내 흘린 듯 얼굴에는 눈물길이 나있었고 그곳으로 계속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버스기사 일을 하면서 받는 월급으로 친척들에게 진 빚이라도 갚고 싶은데 압류될까 무서워 월급조차 통장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연금을 안심통장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도 한 동안 더 얘기를 듣고 조언도 드리면서 그분이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에야 ‘건강하게 연금 잘 받으시라’ 덕담을 드리며 상담을 마쳤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에는 명퇴금, 퇴직금으로 사업을 꿈꾸고 또 시작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사업이 잘 되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100세까지 평안하려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내 돈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던 은퇴자가 굳이 낯설고 힘들고 위험한 사업이라는 세계로 뛰어들지 않더라도 먼저 국민연금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해놓고 퇴직연금, 저축연금, 주택연금, 농지연금 등의 제도적인 연금 상품과 시중의 연금성 투자 상품을 잘 골라 선택한다면 안전하고 훌륭한 노후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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