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구한말의 의병장으로 면암 최익현 선생이 있었다. 갑오개혁 때에 단발령(斷髮令)이 발표되자 이에 항거하여 「두가단 발불가단(頭可斷 髮不可斷) -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라는 강직한 말씀을 남긴 이로 유명하다. 나라가 기울어 외교권을 잃게 된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선생께서는 의병을 일으켰으나 자기 나라의 군대와 싸울 수 없다하여 스스로 체포되셨다. 이 일로 대마도에 연행되어 갇히게 되셨는데, 여기서도 단발에 항거하며 적국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하여 단식을 행하다 병을 얻어 작고하셨다고 한다.

「예기(禮記)」라는 책에 나오는 선비의 행실을 논하는 부분에 「가살이불가욕야(可殺而不可辱也) - (선비는) 죽일 수는 있으나 욕되게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욕되게 살지 않는 것이 선비들의 가질 바 기본적인 몸가짐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면암 선생에게서 그 머리털을 빼앗는 것은 선비의 자존심을 빼앗는 것이고 그것은 선비를 욕되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욕되게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옛 선비들에게서는 이러한 결기가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그랬다.

저 일제강점기 무렵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 어느 의사 한 분이라도 의거 후 도주하려는 생각을 눈곱만치라도 가진 분이 있었던가. 그분들에게는 그 의거가 너무도 마땅하고 떳떳한 것이기에 거사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스스로가 저지른 일임을 일부러 주위에 알림과 동시에 거사의 의의를 대내외에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분들은 잡혀서 조국의 아픈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목숨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이분들에게는 달아나 목숨을 부지하는 일은, 거사의 당당함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하는 일이 될 수 있겠기에, 오히려 욕된 일로 생각되지는 않았을까.

근자에 정의당의 원내대표인 노회찬 국회의원이 스스로 영면에 든 일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장 아프고 중요한 것이므로 그 일을 두고 논평을 가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런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을 애도하고 마음 아파 한 이유는 그 죽음의 까닭이 안타까워서이고 그 죽음을 결단한 까닭이 장렬해서일 것이다.

불법을 저지른 저질 정치집단이 지인의 손을 통하여 건넨 기천만 원의 불순한 돈이 불법정치자금이 되어 노 의원의 행보를 어지럽게 한 모양이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다른 정치인이라면 어떤 변명을 해서든 그 곤경을 헤쳐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변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욕됨이 자꾸 더 욕되게 발전해나가는 정치와 언론의 행태와 그 당사자의 구차함을 그는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으리라. 나아가 그는 그 욕됨이 자신의 쌓아온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의 노선과 동지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를 우려한 것 같다. 그는 스스로를 가장 준엄하게 꾸짖음으로써 책임을 졌다. 옛 선비의 전통을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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