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과의 소중한 추억’. 2018.

좀처럼 접하기 힘든 지방 소도시에서의 특별한 일. 외국인 홈스테이의 경험을 남쪽 땅 사천 이곳에서 하게 되었다. 취지는 아들의 영어에 대한 익숙함이었지만 어쩌면 ‘다 해보고 죽자 철학’ 실현을 위한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변화하지 않을 때 나는 사는 게 지겹다는 감정이 한없이 파고든다. 1년 전은 유난히도 그 감정에 휩싸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다가온 기회. 외국인 홈스테이.

예쁜 긴 금발의 미국인 조던이 가족이 되었다. 아래층은 남자 위층은 여자, 이렇게 시작된 합숙훈련과도 같았던 1년의 동거. 나는 인생을 심각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인가. 인생을 자유롭게 살려는 사람인가. 어찌 나이 사십 줄 중반을 넘어서면서까지 이렇게 놀이문화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아니 인생을 즐겨 가는지. 

미국인 조던은 그동안 전국의 마라톤대회를 다니며 부상으로 받은 쌀로 우리 가정경제에 보탬을 주었고, 아들은 금발의 원어민 선생님과 사는 긴장감에 14kg 몸무게를 줄였긴 하지만 대신 의상 구입비가 급격히 늘어 가정경제에 적잖은 손실을 주었다. 조던은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로 등교하며 배고개 마을길을 미네소타거리로 만들어 주었고, 아들 녀석은 함께 걷는 게 불편한지 1년 내내 차량 등교하여 나의 출근시간을 앞당겨 버렸다.

첫날, 조던에게 세탁기라는 단어에서 혼돈이 와버린 남편은 이후, 꿀 먹은 벙어리로 일 년을 보냈다. 말 좀 하라고 옆구리를 아무리 찔러 보아도 그 입은 더욱 굳건하기만 했다. 자신감 하나는 최고로 손짓 발짓 그리고 발음에 버터를 발라가며 굴려대는 엄마가 부끄러운 아들은 멀리 떨어져 일 년을 보냈다. 나 혼자 독박 쓴 일 년이다. 

홈스테이 일 년, 열여덟과 마흔여덟 부자지간이 같은 공간을 쓰면서, 그들은 연인같이 속속들이 친해져 버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조던의 개인시간과 공간을 배려해 주고 싶은 2층 룸메이트 주인여자는 늦은 귀가 덕분에 세 번의 개인전 성과를 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음 주가 되면 조던과 헤어지게 된다. 주방의 접시가 가지런했고 욕실의 두루마리 화장지가 떨어지질 않았다. 함께 마트에 장 보러 가면서 나에게 슬쩍 건네 보여줬던 조던의 쪽지가 내내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주방세제, 화장지, 샴푸, 키친타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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