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집아기’. 25×25. 2018.

“엄마, 친구 한 놈이 너무 교회에 빠졌어. 걔가 자꾸 나보고 교회 함께 다니제.”

“그래? 너에게 전도하는 거네. 한번 가 봐.”

“왜 그래야 하지? 엄마는 종교라는 것을 너무 쉽게 선택하도록 만드시네. 엄마는 늘 매사가 그런 식이야.”

“아냐. 무슨 일을 그리 어렵게 생각을 해? 넌 좀 쉽게 쉽게 살어. 그렇다면 종교로 가지 말고 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야. 예쁜 여학생들을 볼 수 있어, 네 나이엔 그것도 중요하잖아. 첫사랑이 교회오빠, 교회동생으로 시작하기도 해.”

“난 미술학원에서 여자 보는 걸로도 충분해. 충분히 예쁘고.”

“야, 너는 다다익선도 모르냐. 여자는 이런 애도 예뻐서 좋고 저런 애도 예뻐서 좋은 거야.”

“엄마는 어째 종교를 그딴 데에다가 갖다 붙여.”

“그럼, 교회가면...... 니가 힘들 때 믿고 의지할 존재가 생기는 거니 한번 가 봐. 엄마는 너에게 든든한 형도 누나도 동생도 만들어 주질 못했잖아. 하나님을 형이라 생각하고 한번 살아봐. 살면서 그런 존재 하나는 꼭 필요하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믿어. 내가 종교야.”

“너무 위험한 생각 아니야? 자신이 종교인 사람은 자기에 빠져서 이기적이고 독선적으로 되는 거잖아.”

“난 분명 독선적이지는 않을 거야. 한 번씩 엄마를 보면서 ‘아, 저러면 안 되는구나’ 하고 느끼거든. 엄마는 한 번씩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야.”

“내 독선은 나 자신에 대한 독선이야. 남들이 긍정적 이기주의자래. 사람이 때론 이기적일 필요는 있어. 자신에 대한 이기주의는 어찌 보면 자존감일수 있거든.”

“엄마는 그 자존감이 너무 강해. 하기사 그런 엄마이기 때문에 사실 난 세상에서 믿는 게 딱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내 자신을 믿고, 다른 하나는 엄마이긴 하지.”

“햐, 네가 나를 믿어?”

“어쩔 수 없이 요즘 점점 엄마를 믿게 돼. 뭐든 해결이 될 것 같고 내 안전을 가장 보장해 줄 수 있는 게 나 자신을 제외하곤 엄마라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

“야, 날 너무 믿지는 마. 나도 나를 못 믿어. 내가 어디로 튈지 나도 몰라. 요즘 왜 자꾸 나를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으로 갖다 붙이시나들.”

“나 말고 누가 또 그래?”

“응, 자꾸 나를 믿어. 신망하는 건 감사한데 신앙하는 건 옳지 않아. 네가 나를 믿는 건 감사한데, 대신 십일조는 좀 내고 날 믿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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