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봄이 지나가듯이 선거도 지나갔다. 뜨겁던 열정과 환호 박수와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상처가 때에 맞춰 그 흔적이 차츰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겠는가마는 이 왔다가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시간만큼 무상(無常)한 것은 없다. 여기에 인생을 걸고 여기에 삶을 바치겠다는 그 시기도 지나가면 세월 속에 아련한 그림자만을 남길 뿐이다. 과거의 모든 시간이 그러했고 현재를 지나 저 알지 못 할 미래로 가는 시간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시간이 언제나 머물러 있을 듯이 성공과 영광에 자만하여 득의해 있을 수도 없고 한때 실패하였다 하여 좌절 속에 머무를 수도 없다. 흐르는 시간은 그 성공과 실패마저도 집어삼키고 급기야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있던 것이 완전히 사라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것은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는 긴 시간의 일이기도 하다. 진시황의 일이기도 하고 나폴레옹의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래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라도 하다. 그들보다 훨씬 착했고 자기 할 일에 충실했던 우리 과거의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은 과연 누구의 기억 속에 남기나 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억마저도 남길 수 없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도사(道士)처럼 도를 닦아 우화등선(羽化登仙),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바람 타고 하늘로 오르는 신선이 되기 전에는. 그러니 긴 시간으로 본다면, 저 도사님의 순진한 말이 될지는 몰라도, 이 한때의 성공과 실패에 너무 휘둘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한 사람이 지닌 짧은 시간 속에서도 한 때가 가면 또 한 때가 온다. 계절이 돌아오듯이 선거도 때 되면 또 온다. 그 동안 성공한 사람은 맡겨진 소임에 충실하면 될 것이고 지금 실패한 사람은 새로운 때를 기다려 다시 씨를 뿌리고 그것을 키워가는 일에 전념하면 될 일이다. 당연히 힘을 내고 남다른 각오로 새로운 열기를 얻어 의미 있는 사업들을 추진해 가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선거에 성공한 사람에게야 그의 공약처럼 해야 할 공식적인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겠지만, 지금 울분을 삭이고 있는 실패한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 주리라는 입에 발린 말이 얼마나 또 상처를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인가. 하지만 모든 것이 자기에게 허용된 시간을 경영하는 각자의 몫이라는 것조차 부정할 수는 없다. 기다렸든 기대하지 않았든 때는 오기 마련이다.

다 알다시피, 어느 날의 새벽에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밝히는 태양은 비 눈 안개에 상관없이 날마다 떠오른다.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과 서늘한 가을과 서릿발같이 준엄한 겨울은 지금도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 순환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순환에 편승하여 진정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마땅하고도 착한 일에 오로지 몸과 마음을 쏟는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 차지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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