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천득 ‘인연’ 중에서. 50×45. 2018.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피천득의 인연은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떠나보내지 못하는 내 심장과 인연이 되어 버린 수필 중에 하나이다. 어릴 적 다른 사람의 칭찬 한마디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어 자기의 재능을 펼쳐내기도 하듯이 나 또한 누군가의 애정으로 뾰족 지붕 뾰족 창문의 아사코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소학교 때 귀여운 꽃 ‘스위이트 피이’와 같은 첫 만남과 영양이 되어 청순하고 세련된 ‘목련’과도 같았던 두 번째 만남, 그리고 결혼하여 ‘백합’과도 같이 시들어 가는 세 번째 만남이 그 아사코와 인연의 전부이다. 이 수필을 처음 접한 어린 시절에는 두 번째 만남까지 아사코를 바라보았고, 세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중년이 되고 보니 비로소 세 번째 인연까지 가슴으로 와 닿게 되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사는 사람의 일생을 함께 숨을 조절하며 지켜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가 만나지 못하는 그녀는 인생의 주름이 없었다. 아니 어쩜 가장 소중한 기억이었기에, 그녀에겐 주름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 남자의 지나친 과잉보호 속에 그녀는 항상 소녀로 늙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생동안 남자는 그 기억 그대로 소년이 되어 자신의 늙음을 위로한다. 후에 나는 피천득의 인연을 사랑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것은 분명 첫사랑과 같은 것이라.

나는 지금 뾰족 지붕 뾰족 창문이 아닌, 붉은 벽돌 붉은 지붕에서 살아가는 중년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의 아사코가 아니었을까. 나도 분명 누군가의 소중한 아사코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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