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스릴 치

휴일아침 나를 깨우는 소리가 갱년기 남편의 잔소리도, 사춘기 아들의 투정도 아니다. 좁은 마을길을 굽이굽이 돌아 초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디지털의 스피커를 싣고 힘주어 간절하게 외쳐대는 선거유세차량이 들어온다. 색색의 차량들이 오간다. 그래,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매우 귀한 일이다.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깨우쳐 주는 종교인이나 정치로써 백성을 위하는 일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우리의 다반사가 사람을 다스리는 일과도 서로 상통하는 것이라.

내 이름자 뒤에 선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진 이후, 좌우명처럼 곁에 두고 생각하는 고문진보 글이 하나 있다. 당송팔대가로 유명한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이 그것이다.

등이 낙타처럼 굽어 곽탁타라 불리는 나무 심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앞 다투어 자신의 정원수를 맡기길 원했다. 그가 심은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좋다. 그를 엿보고 따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나무는 그와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어 대답하기를, “나무의 천성을 잘 따르고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입니다. 처음 심을 때는 자식 거두듯 하지만 자랄 때는 버린 듯이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무를 좋게 하려고 뿌리를 구부리고 흙을 바꾸며 북돋음에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합니다. 나무를 사랑함에 지나치게 은혜롭고 걱정함에 지나치게 부지런합니다.” 관리가 와서 “그대의 도를 관청에 옮김은 어떻겠느냐” 물으니 곽탁타는 감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주위를 지켜보니 명령을 번거롭게 내리기를 좋아하여 독촉하고 종용하니 백성을 무척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끝내는 병들게 하고 시들게 하여 화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관리는 나무 키우는 법에서 사람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을 전하여 관의 경계로 삼았다 한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억지로 해서는 나무 한그루 성장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의 본성을 억지로 구부리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감탄하고 탄복하여 마음의 빗장을 열어 그에게로 다가서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이며 다스리는 일이다. 

내가 다시 곽탁타에게 묻는다. ‘예술가의 이치를 나무 심는 것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곽탁타가 이른다. ‘가두려 하지 말고, 얽매이지 않고, 같아지려 하지 말고, 자유롭고자 하는 천성을 지키어 본성을 잘 발휘하고자 한다면 좋은 창작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