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기를 한없이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의 주변까지 끌어와 자기를 이야기한다. 상대방인 나에게 자신을 어필은 해야겠으니 나는 내 귀한 시간에 그의 모든 학연, 지연, 혈연까지 다 듣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가끔은 거침없는 성격의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제가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를 만났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차를 마시고 눈빛을 맞추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기분이 들 때가 간혹 있다. 몹시도 무례했다.

간단한 담소자리에서조차 꽉 채워서 자기를 설명하고 있는 사람을 마주 대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 버리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축지법을 쓰는 사람의 기공마냥 머릿속에 여백을 늘리는 놀라운 묘수를 부리고 있다. 텅.........텅 텅 텅. 그래, 여백은 나의 전공분야였지!

여백이 있어야 우리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수 있듯이 여백이 있는 사람에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훈수를 원한다. 빈틈없이 채워진 사람에게 다가가 또 다른 고민을 그에게 구겨 넣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여백을 부족함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하수와도 같고, 여백을 받아들일 큰 창고라 여기는 사람이 고수가 아니겠는가.

서예가의 흰 화선지, 화가의 흰 캔버스, 작곡가의 음표 하나 그려지지 않은 오선지, 수필가의 칸칸이 비워져 있는 원고지는 분명 그들에겐 무한한 창고일 것이다. 그래서 비워져 있는 여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공간을 누비며 내가 온전히 운용할 수 있는 부자가 된다.

여백은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여유이다. 그래서 여백은, 기력이 높은 사람만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자신감이기에 나는 여백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담백하면서도 충만한 재료들로 장전되어져 있다.

가득 채워서 들여 놓아야만 하는 잡화점의 주인이 아니라, 백지의 화선지를 마주하는 사람이 되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의 호사를 누리려고 여백의 화선지만 덩그러니 붓과 펼쳐 두고 이리저리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니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극히 여백 찬양가인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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