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야당대표의 “원래 창원에는 빨갱이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다 패버리고 싶다.”는 막말에 대한 스스로의 해명은 “빨갱이라는 의미는 경상도에서 반대만 하는 사람을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였다. 그런 의미라면 삼국지 등장인물 중 대표적 빨갱이는 예형이다.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던 조조에게 불손한 행동과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말솜씨와 글재주가 뛰어났던 예형은 특히 북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조조가 주최한 연회에서 북을 치기로 한 예형은 북을 치는 관리로서의 합당한 복장을 갖출 것을 요구받자 문무백관과 조조 앞에서 얼굴색 하나 바뀜 없이 그 자리에서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모욕을 당한 조조는 예형을 죽이는 건 ‘마음만 먹으면 참새나 쥐 한 마리 죽이는 것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인재를 귀하게 쓴다는 명성에 누가될까봐 그를 유표에게 보냈다. 26세인 예형은 유표의 부장 황조의 손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

위 빨갱이 발언에 검찰은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여부에 대한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19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메시지를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영주는 얼마 전 1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문재인이 공산주의자인 것이 사실이거나 그렇게 볼 여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사실에 대한 적시가 아니라 주관적인 의견이나 평가에 불과하다는 것이 무죄의 이유다. 또한 법원은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정치적 인물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허위사실의 유포는 막아야 하지만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할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도 달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관용에 있다. 자신과 견해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 부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민주주의는 위와 같이 관용을 베푼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수사검사가 바로 위 고영주였다. 필자는 위 무죄판결에 동의한다. 전두환,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하고 그 정권을 파쇼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명예훼손죄는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을 때만 성립하는 범죄이다. 개인의 견해, 평가 등의 표현은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실, 즉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적시한 것인 이상 그 내용이 진실이든 허위사실이든 명예훼손죄는 성립된다. 이런 점에서 “창원에는 빨갱이가 많다”는 발언 역시 범죄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이 창원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공자는 60세를 이순(耳順)이라 했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나이, 즉 무슨 말이든 받아들인다는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나이가 들수록 더 편협해지고 더 고집스러워지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제발 그러지 말고 관대하게 행동할 것을 주문하여 이순이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공자는 이런 말도 남겼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몸에는 이롭고, 충고의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하기엔 이롭다고.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