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어처구니없는 정상회담이란다. 야당의 역할이 비판과 견제에 있으니 못할 말은 아니라고 보지만, 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바라보는 국민들 대다수의 얼굴에 비친 기대어린 미소엔 무엇이라 말할 건가. 어리석은 기대 따위는 걷어치우라고? 전쟁 와중에도 크리스마스는 있었고 적장과의 타협도 있었다. 100년 전쟁 삼국지에도 평화와 공존의 시간은 늘 존재했었다.

이어지는 삼국지. 관도대전은 적벽, 이릉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전쟁, 아니 중국 역사를 통틀어 3대 대전 중의 하나로 곱힌다.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수의 군사를 이겼음에 대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관도대전에 앞서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조조는 도겸의 부하에 의해 부모와 그 일가가 죽임을 당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서주에 들어가 무고한 백성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서주대학살이라 불린다. 이는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지나친 행동으로 조조 역시 평생을 두고 후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도겸은 조조의 손에 죽지 않고 병사하고, 이에 유비는 어부지리로 서주를 얻었지만 형편없는 여포에게 내어주고 만다. 여포는 장막, 진궁 등과 합세하여 조조에 대항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는다.

한편 명망가 집안의 자손인 원소 휘하에는 수많은 장수와 참모가 있었지만, 원소는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전 쟁을 시작할 절묘한 타이밍도 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놓치고 만다. 전풍이라는 유능한 모사의 간언에 귀를 막고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가두고 출전한 원소는 아끼던 장수 안량과 문추, 우쭐대던 10만 대군을 잃고 돌아와서는 전풍의 말을 듣지 않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은커녕 옥중의 전풍을 죽이고 만다. 이에 반해 조조는 어떠한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전투에 나가 아주 힘겹게 승리하고 돌아와서는 자신에게 반대했던 참모들에게 상을 내린다. 관도대전에서 대군을 거느린 원소가 패한 이유와 적은 군사로서도 조조가 승리한 이유는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조조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자식들도 모두 아비의 전쟁에 참전했다. 조조의 장남은 전사했다. 필자는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장군의 아들이, 장관의 아들이, 국회의원의 아들이 참전해서 전사하였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중국과 미국의 군인들 속에는 많았다고 한다. 마오쩌뚱의 아들도 한국전 와중에 미군 폭격에 의해 전사하였고 미군 중에도 고위 장성, 정치인의 자식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게 있는가. 고위층의 자녀들의 입영기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참여정부시절이었던가. 국무회의 자리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뿐이라고. 걸핏하면 안보를 부르짖고 남북한 군사적 대결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온 자들과 그 자식들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전쟁터에 있기나 할까. 북진통일을 말버릇처럼 하던 늙은 독재자는 한강다리를 끊고 이미 대전을 지나 대구까지 도망가면서 시민에게 서울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선, 미군의 도움으로 돌아온 서울에서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인민군의 총칼 앞에 어쩔 수 없이 부역한 힘없는 양민을 학살했다.

안보를 부르짖는 자는 정녕 그 자신과 가족의 안녕만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기대되는 평화와 공동번영의 결과 중의 하나로 그들이 마음 편하게 군대 가지 않아도 되는 모병제도 포함될까. 그런 기대라도 소망한다면 ‘어처구니없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