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폭력범죄 피해자를 돕는 국선변호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국선조력인제도가 시작된 7~8년 전부터 해온 일인데, 그 이후부터는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아동, 청소년, 장애인인 경우에는 가해자 측의 상담요청조차 거절해왔다. 성관련 범죄에 관한 우리의 법은 지난 약 10년에 걸쳐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의 확대와 함께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관해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법인「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 성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 아청법」의 존재로 인해 「형법」의 성범죄 관련 규정 대부분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이들 특별법의 주요내용은 이러하다. 강제추행, 강간, 유사강간 등의 성범죄는 ① 피해자의 연령이 19세 이상 성인인지, 13세 이상 18세 미만의 청소년인지, 13세 미만의 아동인지 또는 장애인인지 등에 따라, ② 그 범행에 있어서 주거침입이 있었는지, 흉기 또는 위험한 물건이 사용되었는지, 강도까지 행해졌는지, 친족관계인지 등에 따라, ③ 그 범행의 결과로서 상해, 치상, 살인 등의 중한 결과가 발생하였는지 등에 따라 법정형을 달리한다. 그 외의 성범죄 중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음란물의 제작・배포・상영・소지, 성 매수 등의 범죄는 아청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단순 강간’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성인이면 3년 이상의 징역, 청소년이면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 아동이면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 장애인이면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이 각 법정형이다. 강간의 행위태양이 주거침입, 위험한 물건, 강도 등을 동반하면 위 각 형에서 더욱 가중되고, 그 결과로서 상해나 사망이 발생하면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성인과 청소년을 상대로 한 단순강간을 제외한 나머지 강간 등의 범죄는 대부분 법정 최저형이 징역 10년형이라, 판사가 합의, 초범 등의 정상참작사유를 들어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집행유예의 선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성범죄자에 대한 엄단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나친 형량에 대한 법조계의 비판 목소리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동일한 죄명에 해당하는 범죄라도 개개 범죄의 동기, 행위태양, 피해정도, 기타 범행 전후의 사정 등은 각양각색일 것인데 판사의 재량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는 것이다.

꽤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아무런 전과・전력이 없는 평범한 남자 대학생이 술에 만취하여 길거리를 헤매다가 여대생이 사는 원룸에 들어가서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반항에 부딪혀 미수에 그치고, 순간 술이 깨어 잘못을 빌고 나왔다. 성폭법상 주거침입강간(미수)치상죄에 해당, 그 법정형은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형이다.

피해자와의 합의와 용서가 있었지만, 판사가 선고할 수 있는 최저형량은 징역 5년으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였다.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성인남녀가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다가 술을 사들고 여관에 갔다가 강간으로 이어진 사건이다. 마시려고 가져간 소주병을 들고 위협했다, 반항과정에서 눌려져서 찰과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특수강간치상죄가 적용, 역시 법정형은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형이고, 피고인은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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