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원 경상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리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요즘은 소위 ‘먹방’이라는 말을 외국인들도 알고 있을 만큼, 우리 방송에서 요리에 관한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넘쳐난다. 이러한 현상은 배고픔과 가난을 해결해야 했던 가난의 시간이 점점 잊혀지고, 이제는 맛있는 것,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폭발하게 된 것 같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광고 카피를 패러디 하자면 ‘요리는 과학이다’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실로 요리는 과학인 것이다. 대학에 개설된 전공을 살펴봐도 식품영양학, 식품공학, 식품과학이란 타이틀을 가진 학과가 있으니 과연 먹거리는 과학인 점은 분명하다.

요즘 ‘분자요리’란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을 ‘분자요리학’ (영어로는 molecular gastronomy)이라 부른다. 또는 ‘분자 미식학’이란 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 개념은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와 화학자 에르베 티스가 1988년에 처음 주창하였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조리과정 중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학문은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식 재료를 그대로 섭취하지 않는 이상 조리라는 과정을 통하여 물리적, 화학적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쌀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종류가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매일 먹는 밥, 죽, 미음을 비롯해서 명절에 먹는 여러 종류의 떡을 비롯해서 쌀국수, 막걸리 등을 생각해보면 쌀을 가지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겪는 것이니 그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물리적이고 화학적 변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는 과학이 도입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전혀 새로운 맛과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분자요리학이 가지는 목표중 하나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회 문화적 가치와 더불어 예술적 측면, 기술적 측면이 중요한 목표가 되는 것이다.

에르베 티스가 2006년 발표한 ‘분자미식학의 과학적 연구가 우리 식생활에 주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에 예시로 등장한 요리 중에 ‘깁스’라는 요리를 간단히 소개해보자. 물리학자 깁스(Josiah W. Gibbs, 1839~1903)의 이름을 딴 이 음식은 먼저 계란흰자와 오일을 섞어 마요네즈 만들 때처럼 거품기로 유화시킨 다음 전자레인지 오븐에서 조리하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계란 흰자의 단백질은 응고되는데 반해 흰자 속의 수분과 공기가 팽창하면서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된다. 계란 흰자의 껍질로 유화 액을 감싸는 새로운 요리가 되는 것이다.

분자요리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장비와 재료들이 들어간다. 병원에서 쓰는 주사기를 비롯하여 조리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재료의 질감, 색, 영양 요소를 보존시키기 위해 진공 상태에서의 조리를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기계가 도입된다. 심지어는 재료를 순간적으로 증발시켜 향이 배어있는 연기를 만들거나, 구멍을 내서 재료 속은 익히고 밖은 날 것으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의료용 레이저를 쓰기도 한다.

미식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분자요리 레스토랑 방문기를 인터넷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겐 생소하다. 그렇지만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 요리는 모두 분자요리이다. 쌀에 순간적으로 큰 압력을 주어 내부에 구멍이 많이 생기도록 만든 뻥튀기와 열에 녹인 설탕을 바람에 냉각시켜 실처럼 만든 솜사탕은 엄연히 분자요리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