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시남 사천시문화관광해설사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봄 한철 /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 할 때”
   - 이형기 시인의 ‘낙화’ 중에서

누구나 가슴 속에 시 한 편 쯤 간직하고 있다. 사천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저에게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그러하다. 지난 9일 다솔사에서 지인들과 차를 마시던 중 사천 출신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곤양 출신 이형기 시인이 진주 출신으로 알려져 씁쓸하다는 탄식도 있었다.

‘낙화’로 널리 알려진 이형기 시인이 태어난 곳이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솥골 마을)이다. 곤양고 뒷산이 솥을 걸어둔 형세라 하여 솥골마을로 불린다. 솥곹마을 앞은 비봉내가 적벽을 두고 유유히 지금도 흐르고 있다.

이형기 시인은 하동의 대표적인 시인 나림 이병주 선생의 제자였다. 가까운 진주시에서는 이형기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시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형기 시인은 1933년 솥골마을에서 출생했으나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이 시인의 가족은 시인 출생 2년 후 인근 진주로 이사 갔다. 그는 진주시 중앙초등학교를 입학해 진주농림학교를 거쳐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진학했다. 경성대학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 시인은 2005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많은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이형기 시인의 약력을 보면 진주 출생으로 나오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 사천에서 출생을 하고도 대부분의 문학 관련 서적이나 자료에는 진주로 표기 되고 있다.

이형기 시인의 출생지인 곤양면 서정리 곤양고 앞에 이형기 시인 출생지라는 시비나 비가 세워지길 바라는 심경이다.  비록 태어나서 2년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출생지는  바뀔 수가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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