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⑤경남연극협회장 맡은 장자번덕 이훈호 대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나도 반성…지원금 틀에 갇혀”
“소통과 합의로 발전 꾀할 것…경남연극사 발간 계획”
“전통적 양식을 녹여 내는 게 장자번덕의 멋이자 꿈”

 

최근 경남연극협회 지회장을 맡은 이훈호 장자번덕 대표.

개구리가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3월 5일)의 오후는 포근했다. 특히 사천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 그 중 하나인 향촌동 궁지들에는 이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곳 궁지마을은 사천의 자랑, 극단 장자번덕이 둥지를 트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사천에서 연극을 향한 애정과 열정으로 버티는(?) 장자번덕 사람들! 그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이훈호(53) 대표다. 그는 새해를 맞으며 (사)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경남연극협회) 지회장이라는 큰 짐을 하나 더 졌다. 2011년 전국연극제 대상과 연출상을 받은 것을 필두로 각종 수상 기록과 작품활동 경력을 보면 그의 취임이 낯설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사천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장자번덕에 쏟아온 그간의 세월을 돌아볼 때, 그의 이번 선택은 다소 의외다. 어쩌면 자신의 연극 인생 제2막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자번덕 연습실 앞 햇살 바른 곳에서 그를 만나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었다.

“연극 그리고 장자번덕. 이것만 생각하며 정말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이러려고 연극을 시작했나?’ 이런 회의와 무력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 마음먹었죠. 그랬더니 지금껏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랬다. 대학시절 연극에 입문한 그는 1998년 극단 장자번덕을 창단한 뒤로는 어느 곳에도 한눈팔지 않았다. 아니, 한눈팔 틈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겠다.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시작해 궁지에 터를 잡을 때까지, 그리고 수많은 단원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 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직 ‘사천에서 연극하기’를 머릿속에 그려왔던 것이다.

▲ 전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던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

위기는 제일 바쁜 시기에 찾아왔다. 2011년 <바리, 서천 꽃 그늘아래>로 전국연극제 대상을 받은 뒤에도 2012년 경남연극제 금상(<황구도>), 2013년 경남연극제 대상(<호접몽>)을 잇달아 수상하며 유명세를 이어갔다. 별주부전이나 고려 현종의 이야기를 창작극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주부들을 연극계에 입문 시키는 주부연극교실도 열어 성황을 이뤘다. 이 대표는 “1년간 9~10개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니 말이 안 되는 거죠”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 주부연극교실 수업 모습.

그는 결국 2014년에 이르러 쉼을 선택했다. 함께 극단을 이끌어왔던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는 스페인으로 플라멩코를 배우러 떠나고 다른 이는 12차농악과 타악에 전념했다. 이 대표는 그 해 9월부터 경상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 입학해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내 인생 마지막까지 연극인을 할 건데 이렇게 계속하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을 하니 뭔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문화콘텐츠학을 시작했는데, 비로소 ‘내가 참 별 고민 없이 연극을 해왔구나’ 깨달았죠. 가장 와 닿은 건 문화철학과 문화행정학이죠. 우리나라 문화정책을 처음으로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우리가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반성도 됐습니다.”

그의 반성은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받으려고만 애썼을 뿐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하며 당당히 요구하거나 한 걸음 더 들어가지 못했음을 뜻했다. 자연히 최근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소식을 접하니 화도 많이 났지만 우리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어요. 예전엔 강한 내성이랄까 자생력이랄까 이런 게 있었는데, 최근엔 각종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 거죠. 누군가 짜 놓은 틀 속에 갇힌 느낌도 들고. 그러다보니 끈끈하던 연극협회의 연결고리도 약해져버렸어요. 서로 경쟁 관계가 돼 버렸으니까요.”

이 대표는 비록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경남연극협회가 공동체성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협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 후 추대됐다.

그의 임기는 3년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마음이 바쁘다. 임기 내에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책을 만들어나가는 일을 회원들의 소통에서부터 찾으려 마음먹고 있다.

“경남연극제를 어찌 발전시킬까, 극단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 대외 지원금 문제에 어찌 대처할까, 후배 배우 양성과 관객 개발은 어찌할까 등등 과제가 많습니다. 과제별로 전담팀을 꾸려 토론을 많이 해야죠. 이런 소통과 합의가 있어야 신뢰도 쌓이고 발전도 따르겠죠.”

이 대표는 소통과 합의를 통한 경남연극협회의 발전을 꾀하는 동시에 또 하나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것은 경남연극협회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경남연극사’ 이런 걸 꼭 펴내고 싶어요. 역사라는 게 저마다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잖아요. 기억도 서로 다르고. 그래서 아직 원로 선배님들이 살아계실 때 검증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중요할 것 같아요.”

▲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사진=뉴스사천DB)

햇살이 조금 약해지나 싶더니 순간 서너 명의 단원들이 나타나 바쁜 몸놀림을 했다. 오는 3월 28일 밀양에서 개막하는 제35회 경상남도연극제에 올릴 연극 소품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자연스레 장자번덕과 지역 문화예술계 얘기로 돌아왔다.

“그 동안 장자번덕을 거쳐 간 연극인들이 100명은 넘죠. 그들 중에는 방송 드라마에 출연한 이도 있고, 춤이나 음악, 희곡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이가 적지 않아요. 다 장자번덕의 재산이죠.”

장자번덕의 현재 단원은 단출하다. 이 대표 본인과 아내 이수정 씨를 포함한 5명이 전부다. 하지만 작품을 무대에 올리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땐 다른 단원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지역에서 연극인의 벌이가 빤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조직된, 생존에 최적화된 조직체이라고나 할까?

극단 장자번덕 연습공간이 있는 옛 궁지동사무소와 주변 풍경.

그의 꿈, 목표를 물었다.

“그 동안 5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것 같은데,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태석 님의 <태>라는 작품이에요. 대사나 장단, 몸짓 등이 가장 전통적이고 한국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창단 초기에 했던 건데, 장자번덕이 추구하는 방향과 아주 닮았던 거죠. 그래서 목표는 ‘다시 처음으로’입니다. 연극에 전통적 양식을 결합시켜 이 시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행복을 주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가지는 않으려고요.”

이 대표는 인터뷰를 끝내며 “지금 둘째 딸은 2층에서 장구 연습에 한창이에요. 계속 데리고 가 볼까 생각 중이죠”라며 옅은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전통무용을 전공한 그의 아내가 “경기 도당굿 도살풀이 교육을 받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얼굴에 번진 미소와 너무 급하게 가지 않겠다는 신념에 찬 여유. 둘은 닮은 듯 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분명 가족이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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