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명 성방리는 마을이 온통 문화유적지.. 이번에도 마을주민이 찾아
쇠부리터란 쇠를 녹이고 다루던 장소를 일컫는 말로 야철지(冶鐵址)의 우리말쯤으로 쓰인다. 이 쇠부리터가 사실로 확인되면 사천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이며, 인근에 가장 가까운 쇠부리터로는 합천군 야로면에 한 곳이 있다.
쇠부리터가 발견된 곳은 딱밭골마을 앞산에 있는 산성터 근처다.
처음 쇠부리터를 발견한 마을주민 김희씨와 도예가 김영태씨는 “예전부터 마을사람들이 산에 화산이 폭발한 흔적이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 때 철을 다뤘던 흔적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찾아 나설 생각은 못했는데, 최근 채석장 얘기에 찾아 나섰다가 발견했다”라며 과정을 설명했다.
이 돌덩이들은 남쪽 또는 남동쪽 방향의 경사면에 밀집해 있었고, 아래쪽에는 인위적으로 쌓은 것처럼 보이는 둔덕이 있어, 일반적인 쇠부리터 입지조건과 비슷해 보였다.
돌덩이들을 자세히 살피니 이들은 돌이라기보다 쇠부리가마를 둘러쌌던 점토가 고열에 구워져 만들어진 ‘점토벽덩이’로 보였다. 미세한 틈이 있어 일반 돌보다 가볍고, 쇳물의 흔적인 ‘쇠똥’이 묻어 있었다. 또 철의 원석과 함께 들어갔을 숯의 무늬가 선명하게 남아있기도 했다.
마을주민이자 도예가인 김영태씨는 “이것은 도자기 가마터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훨씬 높은 온도로 가열됐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서적을 확인한 결과 쇠부리터임에 틀림없다”라며 이곳이 쇠부리터임을 확신했다.
학계에서는 고대에 쓰였던 방식이 큰 변화 없이 조선 말기까지 이르렀다고 보고 있어 성방리 쇠부리터에서 특별한 다른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한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삼국시대와 그 이전 시기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로서 오래된 산성이 남아 있고, 그 시기에 곤양과 곤명 지역이 철성(鐵城)으로 불렸던 점, 나아가 이 지역이 가야 소국 중 하나로서 철을 주로 교역했던 역사에 비춰 볼 때, 이 쇠부리터는 삼국시대 이전에 쓰였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생각이다.
김씨와 마을주민들은 현재 쇠부리터 흔적을 문화재청에 알렸고 조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경남도문화재위원회에서 발굴조사단을 구성해 현장을 조사하라고 지시해 조만간 전문가들의 현장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편 이 마을에서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른 바 ‘다슬기화석’과 관련해 문화재청에서 화석전문가들을 보내 29일 현장을 조사했다.
문화재청 사적명승국 천연기념물과 류시영씨는 “육안으로 봐서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 샘플을 가져가 정밀분석을 해봐야 어떤 종류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마을에 채석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발해 문화유적을 찾아 나선 곤명면 성방리 주민들. 이들의 노력으로 성방리는 지금 문화유적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병주 기자
into@news4000.com
다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