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도 기억하고, 북에 보낼 쌀농사도 짓고’ 모내기 행사 가져

‘6.15공동선언 9돌맞이 통일쌀 모내기 한마당’이 사천시 노룡동 충무마을에서 열렸다.
6.15공동선언 9돌을 하루 앞둔 14일 일요일 오전. 누구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한다고 서울로 발길을 재촉하고, 어떤 이는 ‘웬 6.15’하며 역사적 깊은 발자국을 애써 외면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사천 노룡동 한 들녘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이 모내기는 특별했다. 30분이면 논 한 마지기 뚝딱 끝내는 이앙기도 없었고, 내 양식 또는 내 살림에 보태기 위한 목적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 대신 이제는 민속박물관 자리가 어울릴 법한 못줄이 모내기 장비의 전부였다. 또 다섯 살 난 아이부터 예순을 앞둔 할아버지까지 30~40명의 일군들이 뙤약볕 아래서 팔과 발을 걷어 붙였다. 이름 하여 ‘6.15공동선언 9돌맞이 통일쌀 모내기 한마당’이었다.


사천진보연합과 사천시농민회 주관으로, 참가자를 모아 벼농사를 짓고 가을에 수확한 쌀을 북녘에 보내는 게 행사의 골격이다. 대북농업교류협력을 위한 민간단체인 경남통일농업협력회(줄여 경통협)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비료를 제공했다.

논 옆 소나무 숲에서 이 행사를 갖는 뜻을 잠시 듣고, 손모심기를 자처한 참가자들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500평 남짓의 작은 무논에 발을 내딛었다. 모심기를 해본 사람에겐 걱정이요, 처음 하는 사람에겐 설렘이다.

옛말에 “머리만큼 게으른 게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을 해본 사람은 모내기의 고달픔을 알기에 ‘이 논을 언제 다할까’ 걱정이 앞선다. 오히려 모내기가 처음인 사람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 반쯤 물놀이인 어린 애들에게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더 크다.


한 줄 한 줄 모가 심기면서 뿌연 흙탕물에 초록빛이 조금씩 번졌다. 하지만 농부 눈에는 어설프기 그지없는 듯, 걱정스런 잔소리가 이어졌다.

“모를 너무 많이 집었네. 서너 포기만 집으라니깐.” “아이구, 내일이면 저 모 다 뜨겠네. 얘야, 너는 내일 다시 와야겠다.” “발자국을 너무 많이 내면 안 되니까 가위자로 걸어야지.” “너무 깊이 심으면 모가 뿌리 내리는데 힘을 많이 써야 돼.”

노동의 경험을 몇 마디 말로써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말은 알아듣더라도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처음으로 또는 오랜만에 모를 잡고 허리를 숙인 아마추어 농부들은, 프로페셔널 농부의 잔소리를 싫어할 수 없다.

되레 뻐근한 허리고통을 느끼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살았을 농부의 삶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논 바깥에서는 문화패 ‘새터’ 출신의 모내기참가자가 악을 울리고 소리를 했다.

“쾌지나칭칭나네~ 6.15 아홉돌 맞이하여, 쾌지나칭칭나네~ 오늘 짓는 쌀농사로, 쾌지나칭칭나네~ 남북화해 도움 주고, 쾌지나칭칭나네~ 남북통일 앞당기세!!!”

경상도의 대표적 노동민요라 할 수 있는 ‘쾌지나칭칭나네’에 노랫말(그대로 옮겼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을 바꿔 주고받는 소리가 들판에 퍼지니 어느 새 쌀농사도 풍년이요, 통일농사도 풍년인 듯 마음이 넉넉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현 정부 들어 이전 10년의 대북 햇볕정책을 ‘퍼주기식’이었다고 비판하면서 적대감을 키웠다. ‘실용’이니 ‘상호주의’니 강조했지만 돌아온 것은 긴장의 고조. “어쩌면 군부독재시절보다 지금이 남북 긴장감이 더 심하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남북관계가 꼬이면서 이 행사를 후원한 경통협의 한숨도 따라 깊어졌다. 가족과 함께 모내기에 나선 경통협 강신원 이사는 “남과 북이 번갈아 가며 긴장을 조성하니 사업에 차질이 크다”고 넋두리를 털어 놨다.

현재 콩우유 제조공장을 현지에 짓고 있는 경통협은 마무리 자재를 북에 전달하지 못한 채 인천항에 쌓아 놓고 있단다. 그밖에 수시로 왕래하며 업무를 봐야 하는 실무자들의 발까지 묶여 “대화가 끊어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굳이 개성공단 상황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통일을 위한 민간교류 등 ‘다양한 채널의 접촉’이 상당히 위협 받고 있는 셈이다. 그 책임이 남과 북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진 않더라도, 현 정부 들어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는 일, 그래서 6.15 아홉돌을 맞아 그 정신을 되새기고 화해의 손도 내밀어 보기 위한 노력으로 ‘통일쌀 모내기’를 펼치는 까닭일 게다.

손모심기는 그 마을 농부의 눈에도 신기하고 또 기특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소리꾼의 마이크를 빼앗고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즉석 ‘농민 특강’도 이어졌다.

땀 흘린 육체노동 뒤에 먹는 밥맛을 굳이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게다. 밥에 앞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켰다면? 이도 아는 사람은 다 알 터, 상상에 맡긴다.

500평 남짓 작은 논은 점심을 먹고도 1시간이 더 지나서야 골고루 초록 생명을 채웠다. 기계 힘을 빌었으면 30분이면 끝낼 일이지만 어린 꼬마까지 40명은 족히 힘을 썼다.

가을에는 벼베기도 함께 할 예정이란다. 또 다른 논(1300평)에서 자랄 벼와 함께 수확할 쌀은 참가자에게 5kg씩 나눠주고 나머지는 북에 전달될 예정이다. 그것이 얼마나 도움 될까마는, 40여 명이 흘린 땀으로 기억되기에는 충분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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