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대학 시절 이야기다. 지방 도시의 조그만 대학 캠퍼스의 대중적인 스포츠는 축구였다. 촌놈들은 농구를 접할 기회가 있지도 않았고 야구 글러브를 장만할 여력도 없었기에 몸으로 때우는 축구가 가장 손쉬운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막걸리 몇 되박을 걸어 놓고 하는 내기 시합이 유행했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 뚱보 때문이었다. 70년대 당시 대학생들은 몸이 대부분 말라 있었는데 그 친구만 유독 비대했다. 자신은 근육이라고 주장 했지만 몸의 반은 지방덩어리였는데 체중만은 제대로 헤비급이었다. 그는 과거에는 정의감도 있고 사리 분별도 분명한 친구였는데 갑자기 몸이 커지고 나서부터 성격이 변했는지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속한 학과와 축구 내기 시합을 하면 그 어떤 팀도 이길 수가 없었다. 자기 팀은 절대로 골을 먹지 않았고 상대팀은 반드시 실점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대학이 가난해서인지 골대에 네트를 설치해 두지 않았는데 자기 팀 골대에 골인인 되면 무조건 벗어났다고 우기고, 상대 팀 골대에는 한 참 멀리 슈팅이 되었는데도 살짝 골인 되었다고 지랄발광을 하는 것이다. 네트가 없으니 공이 걸려 있지도 않았고 요즘 같이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마구 우겨 되면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어떤 팀이 그 친구 팀과 내기 시합을 하려고 하겠는가? 자연히 기피 대상이 되어버려서 운동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축구시합 장에서 도태된 그 친구가 불현 듯이 생각난 것은 요즘의 국정 교과서 사태 때문이다. 총리는 교학사 교과서가 전국에서 3개교에서만 채택되고 나머지 99.9%의 학교에서는 좌 편향된 교과서를 채택했다고 강변했다. 오죽 수준미달이고 내용이 형편없었으면 그랬겠는가? 9일 국사편찬위원회가 “최몽룡 전 명예교수가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에 낙마했다.”며 나머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교수는 낮술에 취해 몽롱한 가운데 행한 부적절한 언동으로 자진사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집필진 공개’탓으로 돌린 것이다. 공개되었기에 사전에 자격미달인 집필자를 걸러 낸 셈이 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데 억지를 부린다.

정치인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블랙코미디다. 집권당 이모 의원은 국정화 반대 운동이 ‘적화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하고, 서모 최고위원은 ‘북한의 국정화 반대 지령을 받은 단체. 개인을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한 수 더 거든다. 문득 보도된 한 장면이 생각난다. 국정화 반대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하는 여고생과 이를 나무라는 노인들과의 대화다.

“너는 6.25 전쟁을 겪어나 보았냐? 이런 짓을 하게!”
“할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배우는 국사 교과서를 읽어 보신 적 있으세요?”

노인들은 무색해져 돌아섰다. 그나마 정치인들에 비하면 염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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